지난해 보일러를 주력으로 파는 기업 경동나비엔(009450)의 주가가 8만7800원(12월30일 종가 기준)에 마감했다. 연초 4만원대였던 주가가 86%나 오른 것으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10% 가까이 내린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적표다. 그간 주식시장에서 별 존재감이 없던 이 회사는 지난해 들어서만 신한투자증권, DS투자증권이 종목 분석을 시작하는 등 증권시장에서도 주목받는 분위기다.
주가 흐름이 좋다는 것은 현재 가치뿐 아니라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경동나비엔은 왜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것일까.
내수만 놓고 보면, 보일러 시장에 호재라 할 만한 요인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신축 주택·건물 수가 줄어들면 보일러의 신규 설치 수요가 감소하는 데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 보일러 교체 수요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고장이 나지 않는 한 교체 시기를 계속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일러가 들어가는 시점은 아파트 입주 직전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경기가 어려운 영향을 1~2년 뒤에 받는다”면서 “작년부터 건설경기가 좋지 않았던데다 100대 중 대략 80대분의 판매 비중을 차지하는 교체 수요 또한 소비심리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했다.
경동나비엔은 이런 내수의 위기를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풀어나가고 있어 주목받는다. 전체 매출의 61%(2024년 상반기 기준)를 미국에서 올리고 있다. 현지 매출의 70%는 ‘콘덴싱(condensing·기체가 액체로 응축되는 현상을 통해 열을 재활용) 온수기’가 책임지고 있다.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은 콘덴싱 온수기만 놓고 봤을 땐 전체 절반, 이를 포함하는 순간식 온수기 시장에선 점유율 30~40%에 이를 정도로 존재감이 큰 상태다. 일반 온수기 대비 열효율이 높아 에너지 절감에 도움이 된다는 점 덕분이다.
경동나비엔은 여기에 북미에서 신규 제품인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사진)’를 내놓고 난방 시장에까지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올해부터 본격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실적이 좋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존 미국 난방 시스템은 공기가 건조해지고 일산화탄소 질식 등 가스 누출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가스를 연소시켜 뜨거운 공기를 실내로 불어 넣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동나비엔의 신제품은 물을 데운 후 공기와 물을 열 교환해 난방을 공급한다. 물을 통해 습기 있는 따뜻한 공기를 제공한다는 점 때문에 현지 설치업체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미국 수출업체들과 다르게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에서 자유로운 것도 투자 포인트로 거론된다. DS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온수기와 보일러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 필수재로 북미 지역과 기타 지역 내 관세와 수출 규제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러시아로 들어가는 보일러 판매가 규제를 받지 않았다”고 그 근거를 제시했다.
경동나비엔의 실적 호조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2023년 1조2043억원이었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1조3961억원으로 약 16%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도 1059억원에서 1384억원으로 3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콘덴싱 하이드로 퍼네스의 본격 판매에 힘입어 올해 매출은 다시 1조6000억원대로 뛸 전망이다. 북미 제품의 경우 대당 판매가가 내수용보다 최대 3배 높고, 대당 이익률도 높아 전사 실적에 도움이 된다고 증권가는 보고 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2008년부터 콘덴싱 온수기로 북미 시장 물꼬를 텄고, 당시 연간 2만대에 그쳤던 북미 콘덴싱 온수기 시장을 현재 연 80만대 규모로 40배가량 키웠다”면서 “주가는 갑자기 올랐지만, 실적은 계속 좋았을 만큼 내실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