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전력을 대표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의 주가가 2024년 한 해 동안 두 배 안팎으로 오르며 고공 행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데다 미국 전력 인프라의 대규모 교체 시기가 도래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 집계를 보면, 대원전선(006340)일진전기(103590) 주가는 지난해 1년간 각각 157%, 156% 올랐다. 제룡전기(033100)도 2만원대였던 주가가 4만5950원으로 마감하며 129% 상승했고, 삼화전기(009470)세명전기(017510)도 79%, 62%씩 올라 주목받았다. 이 기간 코스피 지수가 10% 가까이 떨어진 것과 대조적이다.

그래픽=손민균

매출의 100%를 변압기로 올리고 있는 제룡전기는 전력 수요 증가의 직접적 수혜를 받았다. 변압기는 고전압을 저전압으로 변환해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쓸 수 있게 하거나 반대로 고전압으로 바꿔 먼 거리로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시장은 건설경기 악화 등으로 변압기 수요가 주춤하지만, 미국은 노후화된 전력망을 교체하려는 수요가 많다.

2021년 488억원이던 제룡전기 매출액은 2023년 1839억원대로 크게 늘어났고, 2024년에는 다시 3115억원(에프앤가이드 전망치)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회사의 해외 매출 비중은 약 92%(2024년 3분기 기준)에 달한다.

변압기 수요가 좋아지면서 전선 회사도 특수를 누리는 분위기다. 노후화된 변압기를 교체하거나 신규 변압기를 설치할 때 변압을 낮춘 전력을 송전하기 위해 전선이 연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변압기 사업뿐 아니라 저압부터 초고압까지 다양한 전선까지 생산하는 종합 중전기(중량이 큰 전기기구) 기업 일진전기가 미주에 이어 아시아, 호주에서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사상 최대 실적 경신을 이어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23년 1조2467억원의 매출을 올린 일진전기는 2024년 1조50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증권가는 추산하고 있다.

대원전선은 전력 송·배전(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변전소로 보내고, 최종 소비자에 공급)용 각종 전선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산업용 전선 등을 주력으로 만드는 곳이다. 5000억원대 매출 중 홍콩, 미국 등을 중심으로 한 수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20~25% 정도다. 최근 미국 여러 전력청과 샘플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미국으로의 사업 확장이 기대되고 있다.

미국의 전력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변압기, 전선 생산 기업이 특수를 이어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명전기는 일본에서 100% 수입하던 전력 송·배전용 전선에 들어가는 금구류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했다. 금구류는 송전탑과 초고압 전선을 연결해 주는 부품으로, 강풍이 불어도 전선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전 세계 AI 상용화로 인한 전력을 감당할 미래 전력망으로 떠오른 초고압직류송전기(HVDC) 송전선로 금구류 개발을 올해 마치고 납품을 진행하며 실적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태다.

AI 데이터센터용 전해 콘덴서 제품을 생산하는 삼화전기도 전력 인프라 수요 증가 수혜에 따라 2024년 매출이 2270억원대로 전년보다 12%, 영업이익은 260억원으로 232%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수출 기반으로 실적을 보여준 K-전력 기업들의 호조는 ‘트럼프 2기’가 출범하는 올해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2기에도 기존 송배전망 교체 수요뿐 아니라 미국 전력 인프라 투자가 지속될 것”이라면서 “유럽, 중동 등으로까지 해외 수주가 증가하면서 변압기 등 K-전력 호황은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에너지부는 약 1000마일(1609㎞) 길이의 송전선을 새로 건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15억달러(우리 돈 2조원) 규모의 송배전망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유틸리티 50개 기업도 연간 시설 투자금을 2024~2026년 2000억달러(약 294조원) 안팎으로 크게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