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은 지난 8월 폐암 신약 ‘렉라자’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렉라자는 국내 바이오 벤처 오스코텍 자회사인 제노스코가 보유하고 있는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관련 물질로, 유한양행(000100)이 2015년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해 취득했다.
이후 유한양행은 3년 후인 2018년 렉라자의 임상 1상을 진행하던 과정에서 미국 존슨앤드존슨(J&J) 자회사인 얀센에 렉라자 기술을 1조4000억원에 수출했다.
지난 25일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국내 바이오벤처 혁신 생태계 고도화 방안’ 간담회에서 만난 이영미 유한양행 부사장은 “렉라자는 국내 바이오 벤처가 합성한 초기 물질로 유한양행의 임상 등 개발(develop) 과정을 거쳐 미국 얀센에 기술 수출하며 글로벌 신약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유한양행은 앞으로도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제2, 제3의 렉라자를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또한 “국내 바이오 벤처는 물론 중소·중견 제약사가 글로벌 제약사와 오픈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더욱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렉라자의 성공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오픈이노베이션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신약 개발은 약 10년 이상 걸리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비즈니스다. 약 1조4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때문에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등 신약 출시에 이르기까지 협업과 파트너십은 필수다.
국내 바이오 벤처, 중소·중견 제약사의 경우 더욱 그렇다.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해 연구개발(R&D), 임상 등 신약 개발 등에 나서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중요한 배경이다.
특히 벤처캐피털(VC) 등 재무적투자자(FI)는 물론 유한양행이 기술 수출한 얀센과 같이 신약 개발 노하우와 기술을 지닌 전략적투자자(SI)와의 협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제약·바이오 분야 VC 투자가 줄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글로벌 제약사의 SI 역할은 더 부각되고 있다.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에 따르면, VC의 국내 제약·바이오 투자는 2021년 1조9000억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2년 연속 감소해 지난해 9800억원을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바이오 벤처 혁신 생태계가 구축된 해외 클러스터로 진출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세계 바이오산업의 요람인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와 ‘유럽 제약시장의 관문’으로 불리는 ‘스위스 바젤 생명과학 클러스터’에 진출, 클러스터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유수의 대학과 모더나·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가 몰려 있고, 스위스 바젤 이노베이션 파크 역시 로슈·노바티스·론자 등 글로벌 제약사를 비롯해 약 700여 개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밀집해 있다.
특히 최근 스위스 바젤 생명과학 클러스터는 초기 바이오, 헬스테크 스타트업의 대형 제약사와의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데이원(Day One) 프로그램을 통해 8억원까지 지분 투자도 가능하다. 자금 여력이 없어 R&D, 임상 등에 나서기 어려운 국내 바이오 벤처가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펼치기에 적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18년 시작된 이후 128개 기업의 액셀러레이팅을 실시했다. 포트폴리오 기업의 가치가 약 5억스위스프랑(약 8000억원)을 넘는다.
다이아나 코테시 바젤투자청 매니저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지만 자금력, 인력 등이 구성되지 않아 프로토타입 제작이 어려운 예비 창업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 창업자들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뛰어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국내 바이오 벤처들이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바라보고 세계적인 대학과 제약사들이 모여 다양한 오픈이노베이션을 펼치는 글로벌 바이오 클러스터에 직접 진출해 이들과 협업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