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오금희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처럼 지낸 강태리가 세운 ‘우연무역’에 입사해 회사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강태리와 오금희의 스킨십을 목격한 신입사원이 두 사람을 레즈비언 커플로 오해해 퇴사하게 되고, 그 자리에 완벽한 스펙을 가진 유보라가 입사한다. 그는 내로라하는 전 회사에서 잘린 이유를 ‘레즈라서’라고 밝히고, 오자마자 금희에게 관심을 보인다.

스푼랩스의 숏폼 드라마 플랫폼 ‘비글루’ 1위에 이름을 올린 ‘퇴사를 요청합니다’ 주요 줄거리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세 여자의 미스터리 GL(Girls Love) 장르다. 일반적으로 방송 등에서 다루기 어려운 성(性) 소수자를 소재로 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빠른 전개와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워 인기몰이 중이다.

숏폼 드라마 '퇴사를 요청합니다'에서 주인공 오금희와 강태리가 스킨십하는 모습. 신입사원이 이를 목격하고 그만둔다. /비글루 캡처

숏폼(짧은 동영상) 콘텐츠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1회당 1~2분, 총 30~100화로 제작되는 숏폼 드라마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시청자에게 어필해 다음 화를 보게 하고, 결제까지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자극적인 스토리를 인물 중심으로 풀어내는 콘텐츠가 많다. 실제 비글루 인기 상위에는 ‘내 남친은 찐따입니다’ ‘열아홉 금지하라’ ‘전학생은 좀비’ ‘오늘부터 재벌집을 파괴하겠습니다’ 같은 작품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숏폼 드라마는 웹툰 플랫폼과 같은 방식으로 초기 5~10화 정도는 무료로 제공한 뒤, 회당 결제하거나, 광고를 시청한 뒤 무료로 보는 수익모델을 택하고 있다. 50회 작품을 1회당 50코인씩 내고 본다고 가정할 경우 총 2500코인, 우리 돈 1만3900원(비글루 기준)을 결제해야 하는 식이다.

작품당 1억~2억원 수준을 투입해 2~4주 안에 제작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이라는 시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현재 웬만한 드라마는 작품 당 최소 200억~300억원이 소요된다. 제작사는 물론, 편성·유통을 담당하는 방송사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드라마 방영 대신 상대적으로 투자 대비 성과가 좋은 예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확산했던 숏폼 드라마가 국내로 불붙는 조짐이 보이자 ‘벤처업계 신화’ 장병규 의장이 이끄는 크래프톤(259960)이 ‘비글루’ 운영사 스푼랩스에 1200억원을 전격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오디오 플랫폼 ‘스푼’을 운영해 온 스푼라디오는 지난 7월 비글루 공식 론칭에 발맞춰 사명을 아예 ‘스푼랩스’로 바꾸고 오리지널(자체 제작) 드라마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연말까지 120여개 오리지널 드라마를 확보해 일본, 미국 등으로 진출한다는 목표다.

숏폼 드라마 플랫폼 '탑릴스'. /폭스미디어 제공

국내에선 지난 4월 폭스미디어가 ‘탑릴스’라는 플랫폼을 처음으로 출시했고, OTT 플랫폼인 왓챠도 9월 ‘숏차’를 선보이며 출사표를 던졌다. 코퍼스코리아, 디앤씨미디어(263720), 리디 등도 플랫폼 론칭을 준비 중이거나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신한투자증권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숏폼 드라마 시장은 중국, 미국 순으로 크다. 중국은 지난해 시장 규모가 374억위안(약 6조9000억원)으로 이미 영화 시장의 70%까지 올라온 상태다. 미국도 올해 1~8월 상위 10개 숏폼 드라마 플랫폼 합산 매출이 3억8000억달러(약 7조80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보다 20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도 올 들어 관련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데다 최근 유튜브가 업로드할 수 있는 쇼츠 길이를 최대 3분까지 늘리면서 숏폼 드라마 확산이 본격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현대인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짧은 시간 내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숏폼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비즈니스가 장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그전까지 콘텐츠와 이를 홍보하기 위한 마케팅 비용에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좀 더 관망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