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는 여성 벤처인 뿐 아니라 수많은 소상공인과 소비자가 피해를 받은 사건으로 정부와 해당 기업이 책임 있는 자세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티메프가 지난 10일 법원의 관리하에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됐다.

1998년에 설립되어 4000여개의 벤처기업들이 소속된 한국여성벤처협회 윤미옥 회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조인원 기자

티메프 피해로 도산위기에 놓인 판매업체들은 한 푼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티메프 회생 진행을 위한 의견서를 잇달아 제출해 왔다. 티메프가 이대로 파산할 경우 단 한 푼도 못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회생 절차에 들어가 일부라도 보상을 받기 위한 행보다.

티메프 측은 회생계획안 인가 전 외부 투자자에 회사를 매각해 마련된 정산금으로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티메프 피해 판매업체(셀러)들은 이커머스 플랫폼 전반의 신뢰 회복과 정산주기 단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2022년 머지포인트 사태에 이어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정부에서 관련 법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주식거래 자금을 한국예탁원이 보호하는 것처럼 에스크로 제도(은행 등 제3자가 대금을 맡아둔 뒤 결제확정시 정산하는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벤처협회는 약 4000여곳의 벤처기업들이 소속돼 있는데, 이들 중 패션·뷰티 등 생활밀착형 제조업을 운영하는 여성 기업인들이 많다. 이들은 이번 티메프 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은 티메프 사태의 재발 방지 방안으로 에스크로 전면 도입과 정산 주기 단축 등 제도 개선에 본격적으로 착수했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다.

정부도 티메프의 정산대금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 이커머스 플랫폼이 소비자의 상품 구매 후 짧게는 10일 안에 입점 업체들에 대금을 정산해주도록 강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티메프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책으로, 플랫폼이 긴 정산 기한을 악용해 대금을 빼돌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쿠팡은 정산주기가 주 정산과 월 정산으로 나뉘어지는데 매출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매출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한 달 이상 지나야 정산을 받게 되는 셈이다.

쿠팡 상황은 그나마 낫다. 쿠팡은 직매입 비율이 높아 현행법상 대금 정산 기한이 정해져 있다. 현행법상 상품을 직접 매입해 파는 대형마트들은 납품 업체에 40~60일 이내에 대금을 정산해 줘야 한다.

하지만 티메프 같은 ‘판매 중개업자’들은 이런 규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티몬 등이 기한을 최장 60일 이상으로 운영하며 미정산 대금을 다른 목적에 활용한 것이 이번 티메프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됐다. 판매 정산금을 먼저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이후 끌어들인 자본으로 갚는 방식으로 일종의 돌려막기에 나선 것이다.

윤 회장은 “재무구조가 취약한 벤처‧스타트업은 성장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번 티메프 재발방치 대책 마련 외에도 벤처기업의 사업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정책기관의 엔젤투자, 저금리 대출 등이 확대되어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 20년간 인공위성 영상분석 회사를 이끌어 온 여성벤처인이기도 하다. 그가 설립한 지아이이앤에스는 우리나라 궤도위성이 스캐닝한 지구의 영상을 육안으로 판독할 수 있는 상태로 가공·처리하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

위성이 3600㎞ 상공에서 지구를 돌며 찍은 원시 영상은 이 회사가 구축한 시스템을 거친 후 판독자에 의해 영상 분석이 이루어진다. 이 기술은 태풍 예보 시스템 등에 활용돼 태풍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돕는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윤미옥 한국여성벤처협회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제2의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최근 티메프 사건을 계기로 에스크로 필요성과 대금정산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여성벤처인들의 생각은 어떤가.

“티메프 등에 납품하던 여성 벤처인들은 이번 미정산 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증권 플랫폼들이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은 한국예탁원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많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므로 플랫폼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에스크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주식거래 자금처럼 시스템으로 판매 정산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정산주기를 짧게 당기거나 에스크로를 도입하면 플랫폼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심한 플랫폼은 4개월 이후에 정산해 주는 곳도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이 단순하지 않고 납품업체와 협력사 구조가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에스크로 제도를 다 도입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들이 한 번에 정리되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플랫폼 부도 등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후 단기 처방만 하면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수반돼야 한다.”

―취임 1년6개월여가 지났다. 그간 성과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여성벤처 플랫폼이 없었다. 여성벤처 지원 및 금융 정책을 한 곳에 모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여성 테크기업이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전문 인력 부족과 예산의 한계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노이 여성경제인협회와 전략적 제휴(MOU)를 맺고, 공항 면세점 안에 여성벤처관을 만드는 등 여성벤처 활성화를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다.”

―공약으로 여성벤처 생태계를 강조했다. 이의 일환으로 세계여성벤처포럼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테크기반 여성기업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투자유치와 글로벌화 등 지속성장을 위한 동력 확보는 어려운 실정이다. 수출경험이 있는 여성 테크기업은 약 13%로 글로벌 진출을 위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상대회를 보고 세계여성벤처포럼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미국(Women In Tech Global Summit)과 유럽(European Women In Technology)에는 여성테크 관련 포럼이 있다. 오는 11월 여성벤처의 날을 맞아 개최되는 세계여성벤처포럼은 전 세계의 테크기반 여성기업인을 중심으로 비즈니스협력과 네트워킹, 강연 및 포럼, 수출상담회 등 여성벤처기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해외 바이어를 국내로 초대하여 만남의 장을 마련한다면, 그동안 해외진출을 망설이던 벤처기업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10개 기업이 출국하는 것보다 1명의 바이어를 초청하여 10개 기업을 만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면서 애로사항은 없나?

“여성벤처와 관련해선 현재 별도의 지원 법률이 없다. 1997년 이후 10년 주기로 연장돼온 벤처기업특별법이 올 7월부터 개정돼 상시화되지만 그간 벤처기업 중에 월등히 남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성벤처기업에 대한 지원 법률이 부재하다. 그러나 최근 여성벤처기업인들의 활동이 남성만큼 많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법의 부재로 예산 책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여성벤처 후배들에게 한가지 조언을 한다면.

“창업하기 전에 조직을 경험해 볼 것을 권장한다. 팀원으로 조직을 경험한다면 대표가 되었을 때 팀원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잘 이해하는 대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절대로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창업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러나 강한 사람이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남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