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하이브(352820)의 자회사 어도어를 이끌어 온 민희진이 27일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경영에 손을 떼는 모양새다. 뉴진스 제작(프로듀싱) 업무는 이어가기로 했다. 하이브가 지난 4월 22일 민희진 등 어도어 경영진이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을 확보했다며 내부 감사에 착수, 분쟁을 공론화한 지 약 넉 달 만이다.
하이브는 5월 31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민 대표를 해임하려 했었다. 하지만 법원이 민 대표 측에 손을 들어주면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회사는 대신 민 대표 측근 2인을 해임하고, 하이브 측 이사 3명으로 어도어 이사회를 꾸렸다.
상법상 주식회사 대표이사 변경은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언제든지 가능한 만큼 민희진 해임은 시간문제라는 평이 나왔다.
이날 어도어는 이사회를 열고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김 신임 대표는 지난 5월 이사회에서 하이브 측이 선임한 CHRO(최고인사책임자)다.
이는 7월쯤 하이브가 민 전 대표와 주주간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양 측의 주주간계약에는 대표 임기 보장과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등이 포함돼 있었지만, 이 계약이 해지되면서 민 전 대표가 대표를 유지할 근거도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1000억원 상당으로 추정되는 풋옵션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어도어의 지난 2년간 영업이익 평균치의 13배 값에 민 대표의 지분 비율 18%를 적용한 금액이다.
어도어 측은 “이사회는 경영과 프로듀싱을 분리하는 것이 어도어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면서 “김주영 신임 대표는 다양한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HR)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그간 ‘경영과 제작을 분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 온 민희진이 어도어에 남아 뉴진스 프로듀싱을 이어갈지 주목하고 있다.
민희진은 지난 5월 기자회견에서 “경영을 프로듀싱과 분리해 전문 경영인이 맡아야 한다고 하는데, 엔터업은 사람을 가지고 하는 일로 어떤 프로덕트(물건)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돌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업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다. 프로듀싱과 경영은 분리돼선 안 된다. 난 경영에 소질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민희진은 한편으론 “직위에 대한 욕심, 돈에 대한 욕심 자체가 이 분쟁의 요인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멤버들과 비전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이 크다. 솔직히 말해서 돈이랑 바꾸라면 바꿀 수 있다”고도 밝힌 바 있다.
민희진이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하이브와의 갈등은 일단락되는 모양새이지만, 하이브가 업무상 배임 혐의로 민희진을 형사 고발했고,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
하이브와 오랜 갈등을 이어가면서 대표이사로서의 신의(선관주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장 독립했을 경우 재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표이사직도, 풋옵션 기회도 잃게 될 처지에 놓인 민희진의 향후 행보는 본인 판단에 달렸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그가 키운 뉴진스 전속 계약은 2029년까지 5년가량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