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배는 물건 실을 자리가 없어 그냥 패싱(건너뛰기)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어요. 미국 등 현지 수요는 늘고 있는데, 배를 구하느라 웃돈이 붙고 있어 수출이 늘어도 수익성은 안 좋아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최근 만난 수출 제지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가뭄 장기화로 인한 파나마 운하 통행 차질, 홍해 일대에서의 예멘 후티 반군 도발 등으로 해상운임이 상승한 가운데 최근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늘어나면서 해상 물류를 이용하는 수출 중견·중소기업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국내 내수 부진으로 상대적으로 소비 여력이 회복되고 있는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에 힘을 싣고 있는 제지업계는 중국과 선적 확보 경쟁으로 수익성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픽=손민균

3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부산발(發) 한국 컨테이너선 운임지수(KCCI)는 지난해 평균 1359에서 현재 4778(7월 1일 기준)로 3.5배 상승했다. 중국 상하이를 거쳐 유럽 최대 항구인 로테르담(네덜란드)으로 향하는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는 7106으로 3.7배 가까이 상승했다.

현재 국적선사가 HMM(011200) 한 곳인 데다 중국~미국, 중국~유럽 노선의 해외 선사의 경우 대부분 중국에서 물량을 채우면서 한국 제지업체들의 선적 공간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장기 계약을 맺는 대기업과 달리 중견·중소기업은 현재 시세로 거래해 조건이 더 불리한 형편이다.

중국은 소비 위축 상황에서 자국 내 생산이 증가하면서 지난 5월 기준 산업 재고 규모가 16조7000억위안(약 3000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저가로 과잉 물량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는데, 실제 지난해 10월 중국 수출단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10% 가까이 하락하며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반면 수출 물량은 올해 초 20%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 무역 협정(FTA)을 맺지 않은 멕시코가 철강에 이어 최근 제지까지 최고 25%의 임시 관세 품목에 포함시킨 것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업계는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가는 중국 기업들을 겨냥하는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며 "한국이 영향권에 들어갔고, 미국으로 가지 않더라도 멕시코 자체도 큰 시장인 만큼 FTA를 맺든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종이·판지 수출액은 약 12억달러(약 1조66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가까이 줄었다. 다만, 이 기간 최대 수출국인 미국으로의 수출액은 2억6000만달러(약 3600억원)로 27%가 증가했다.

국내 1·2위 제지업체인 한솔제지(213500)무림P&P(009580)는 전체 매출의 절반가량을 수출로 올리고 있는데, 수출 호조 분위기가 해상운임 상승으로 인한 물류비 증가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재출범할 가능성에 따라 중국이 선제적으로 물량 밀어내기에 나선다는 분석도 있다"며 "내수 상황이 좋지 않은 한국·중국의 제지 수출 경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