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중동을 동남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이 19위(2023년 기준, 세계은행)죠. 이렇게 부자 나라가 미국이나 중국, 동남아보단 인재가 적어 경쟁이 덜 치열하고 규제 문턱도 낮아요. 게다가 탈(脫)석유화로 경제 구조 전환에 나서면서 세계 시장으로 문을 활짝 열고 있어요."
최근 방한한 중동 기반 벤처캐피털(VC) '쇼룩파트너스(Shorooq Partners)'의 신유근 대표는 지난 24일 서울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스타트업이 중동 시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VC 가운데 중동 시장에 주력하는 곳은 쇼룩파트너스가 유일하다.
2017년에 신 대표와 마무드 아디 공동 창업자가 설립한 쇼룩파트너스는 MENAP(중동, 북아프리카, 파키스탄) 지역의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수도 아부다비 본사 외에도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한국에도 최근 지사를 설립하고 팀을 꾸렸다.
쇼룩파트너스는 약 4000억원(AUM)의 자산을 굴리고 있다. 사우디벤처투자(SVC), 사우디국부펀드(PIF Jada) UAE 아부다비개발지주회사(ADQ)·무바달라 등 중동 국부펀드를 비롯해 11개 주요 출자자(LP)가 자금을 대고 있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출자사)와 카카오(035720)인베스트먼트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4개 펀드를 통해 80여곳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주로 MENAP 소재 기업이 대상이지만, 최근 국내 초기 스타트업 6곳에도 투자하며 본격 행보에 나서고 있다.
신 대표는 "인구 8억명에 육박하는 MENAP의 총 벤처 투자 규모는 4조원으로 2030년 10조원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현재 이미 10조원 규모인 국내와 비교해 볼 때 작다고도 볼 수 있지만, (쇼룩이 사업을 시작한) 지난 2017년과 비교하면 40배가 증가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유망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될성부른 기업은 시드(Seed) 단계부터 우리 돈 최대 65억원가량을 유치할 수 있으며, 시리즈A 단계가 되면 200억~400억원까지 받을 수 있어 투자 규모로는 현재도 이미 장점이 있는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쇼룩파트너스는 한국이 잘하는 ▲콘텐츠 ▲딥테크(인공지능·빅데이터·로봇 등 기반 기술 지칭) ▲헬스케어 ▲블록체인 등 네 가지 분야 기술 기업이 중동 시장에 진출해 볼 만하다고 했다.
신 대표는 "2010~2015년 한국에선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이 본격 열리면서 뒤이어 이를 뒷받침할 핀테크(금융+기술), 배달·물류 등의 산업이 성장했는데, 중동도 그 뒤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사우디아라비아, UAE에선 딥테크가 최근에서야 고개를 들고 있어 관련 기술 기업의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실질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선 중동에 사무실과 팀이 필요하며, 중동과 한국 두 시장을 모두 이해하고 교두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쇼룩파트너스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며 "꼭 투자까지 연결되지 않더라도 현지 네트워크와 연결하고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쇼룩파트너스가 투자한 국내 스타트업 '디토닉'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기업간(B2B) 전자상거래 플랫폼 '리테일로'와 손잡고 중동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거나 한국·일본에서 e심(내장형 가입자식별모듈)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베이콘이 현지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 대표는 "중동 하면 많은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할 생각만 하는데, 역발상으로 사업으로 진출하고, 좋은 현지 기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나간다면 오랜 친구를 만들기도 좋고 장기적으로는 투자 유치를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서 "며칠 일정으로 와서 기업설명(IR)만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훨씬 더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자 결정까지 여러 차례 미팅과 30번 이상의 레퍼런스 체크 등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 "해당 미팅을 잡는 데도 한두 달이 소요되는 등 급하게 접근해선 안 되는 곳이며, 중동의 '오일 머니'가 눈먼 돈이 아니라는 점도 주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