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많은 기업이 큰 희망을 품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오지만, 대부분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공한 스타트업을 보면, 한국 네트워크를 넘어 더 큰 스타트업·투자자 네트워크를 활용합니다. 더 큰 커뮤니티에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 큰 시장에 대한 관점을 키우고, 자본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23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스타트업 특화 로펌을 차린 '벤처 퍼시픽 법률사무소(VPLG)'의 김용세 파트너는 지난 23일 저녁 서울 강남구 소재 창업보육센터인 '마루180′에서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 창업자 150여명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VPLG가 실리콘밸리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을 위해 진행한 행사에서다. VPLG는 미국 내 스타트업 설립부터 투자, 플립(본사 이전), 신사업 등의 영역을 폭넓게 법률 자문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 사무소도 열었다.
외교부의 김경태 전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영사는 "한국만의 네트워크를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한인 이벤트 등을 징검다리로 현지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다"면서 "단순히 네트워크를 많이 한다고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고,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야 네트워킹도 성공할 수 있다. 이들은 사업적으로 매우 열려 있다"고 했다.
벤처캐피털(VC)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는 현지 네트워크로의 가교를 자처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기반의 프라이머사제는 현지 창업하는 한국 스타트업을 선별해 초기(시드) 투자를 진행하는 곳이다. 최대 한인 네트워크 모임인 '82(한국의 국가 번호를 의미) 스타트업 서밋'을 매년 개최하는 등 실리콘밸리 진출·정착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박이안 프라이머사제 파트너는 "'엘리베이터 피치(짧은 시간에 사업 모델을 발표하는 것)'가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면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10초 안에 내가 무슨 사업을 하고 있고, 왜 이게 재미있고, 우리에게 투자하지 않으면 왜 후회하는지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제안서(피치 덱·Pitch Deck) 역시 한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스타트업의 덱을 보면, 글자가 너무 많은데 현지 투자자들은 적어도 이런 덱을 하루에 100개 이상 받기 때문에 10초 안에 첫 페이지에서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한다"면서 "디테일한 수치는 뒤로 넘기고, 첫 페이지에선 왜 덱을 봐야 하는지, 이 사업을 왜 내가 해야 하고, 왜 지금 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핵심만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투자자와 미팅까지 진행되는 것은 이 10초 장벽을 넘어 제안서 전체를 읽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들과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자체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실리콘밸리에 오피스를 두고 있는 화상 영어 스타트업 '링글'의 이승훈 대표는 "현지 사무소 운영 비용 등이 만만치 않지만, 현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고급 개발자를 확보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업을 고도화하고, 매출로까지 연결시키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기하 프라이머사제 대표는 "한국 기업이 시드 단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받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매출이 나기 시작하는 시리즈A 단계 이상부터는 불가능하지 않다"면서 "이스라엘이 정부, 투자자가 나서 현지 창업자를 밀어주듯, 우리나라도 비슷한 생태계가 구축되기 시작한 만큼 프라이머사제도 한인 창업자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더 많이 나갈 수 있도록 투자하며 열심히 도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