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를 활용한 영어회화 공부법'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이는 2000명 이상의 미국·영국 명문대 출신 원어민 튜터(강사)를 내세워 영어회화 설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링글' 같은 스타트업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 가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에 진학한 이승훈 대표는 영미권 대학을 졸업한 400여명의 동기생들 사이에서 영어로 애를 먹다가 2015년 링글을 창업했다.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쓰는 전화영어만으론 수업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었는데, 동기생들과 대화하면서 오히려 큰 도움을 받았던 것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수많은 영어회화 서비스 중에서도 명문대 출신 튜터 선발·관리에 공을 들이며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링글은 2021년까지 기업가치 1000억원을 인정받아 누적 234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매출은 지난해 처음으로 100억원 구간을 돌파했고, 올해 상반기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약 40% 성장했다. 회사는 올해 매출 200억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고급 인재와의 영어 과외 콘셉트'로 승부를 본 링글도 생성형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AI 기술을 연구해 적용하며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아직 AI 수요가 크지 않은 초등영어 시장에까지 뛰어든 상태다.
최근 이 대표를 서울 중구 광화문 일대에서 만났다. 링글은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초격차 스타트업 프로젝트는 AI, 미래모빌리티, 시스템반도체 등 10대 신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혁신적인 기술과 비전을 가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대표는 "영작과 번역은 이미 AI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말하기도 향후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때문에 대체될 수 있다"면서도 "데이터가 많아야 보다 의미 있는 튜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은 일대일 학습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는 링글에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레드오션인 영어회화 시장에 최근 '챗GPT'가 유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 같은데.
"이제 챗GPT 돌려도 영작(영어로 작문하는 것)이 잘 된다. 독일 AI 번역 스타트업 딥엘(DeepL)은 까다롭다는 한국어 번역까지 잘한다. 영작과 번역 시장은 AI로 주도권이 넘어간 것 같다. 하지만 말하기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고 본다. 챗GPT가 동시통역 기능을 내놨지만 이를 켜고 대화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영어 학습의 가장 큰 문제는 새해 공부를 결심해서 1년 결제까지 해 놓고도 꾸준히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1대1 화상이나 전화로 진행하는 영어 공부는 더욱 그렇다. 공부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있어야 하는데 AI는 아무런 죄책감도 주지 않는다. 당연히 AI가 시장에 들어오고, 이를 잘 따라간다면 당연히 실력이 늘 수 있지만, 사람이 준비가 안 돼 있는 것이다. 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고, 게임이 더 재미있다면 '공부는 다음에 하면 되지 뭐' 하는 것이다."
─링글도 AI 기술을 개발, 적용한 것으로 아는데.
"링글은 두 가지로 AI를 쓰고 있다. 링글 수업을 마치면 튜터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MP3 파일과 스크립트를 기본 제공하는데, 자연어 처리 기술을 이용해 스크립트를 분석, '문법' '어휘력' '유창성' '발음' 등 네 가지 기준으로 틀린 것을 맞는 표현으로 고쳐주는 등 진단을 해준다. 챗 GPT는 이에 특화된 엔진은 아니기 때문에 대화는 해줘도 틀린 것까지 세밀하게 교정해 주진 못한다.
또 챗GPT의 오픈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AI 대화 엔진'도 만들었다. 선택한 주제로 챗GPT와 연습해볼 수 있다. 튜터 수업 전후로 예습이나 복습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 유료 이용자를 대상으로 AI 대화 엔진 이용권을 몇 회씩 무료로 드리고 있다. 향후에는 이 상품만 단독으로도 판매할 예정이다."
─챗GPT와 대화하는 것과 링글의 AI 대화 엔진을 쓰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엔진 자체는 차이가 없지만, 이를 얼마나 잘 정의해 수행하도록 하는가는 데이터에 따라 갈린다. 링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영어 회화 일대일 수업 데이터를 갖고 있다. 링글 수업을 100회 들은 사용자를 위한 맞춤 AI 튜터도 금방 만들 수 있다. 나의 실력이나 상황에 최적화된 AI 튜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하거나, 챗GPT와 수업을 진지하게 여러 번 해야 하는 것이다. 챗GPT가 싸고 성능이 좋기 때문에 향후엔 시장이 대체될 것이다."
─AI 수준이 지금보다 더 올라가면 영어 공부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20년 전부터 나왔던 주장이다. 우리가 외국 영화를 더빙으로도 볼 수 있지만 자막을 선호하는 건 오리지널에 대한 감성 때문이다. 당연히 AI가 있다면 외국인과 소통이 잘될 것이다. 하지만 아쉬울 수 있다. AI가 100% 정확하게 나의 뉘앙스를 전달하는지도 알 수 없다. 기업의 경우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전히 링글 등 영어 교육 수요가 큰 상황이다."
─ 초등·중등생을 위한 화상영어 서비스 '링글 틴즈'도 내놨는데.
"지난해 출시한 링글 틴즈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9배 넘게 증가했다. 그룹·암기식 수업을 하고 있는 기존 어학원과 달리 명문대 튜터가 수준에 맞는 일대일 수업을 제공하기 때문에 영어유치원 다음에 갈 곳으로 링글이 입소문을 타고 있다. 당장 입시 공부를 하는 것은 이르지만, 영어에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는 학부모 수요와 맞아떨어지고 있어서다. 정해진 답변을 줄줄이 외워서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다.
강남구 대치동을 중심으로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학원가와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서 얼리 어답터(신기술을 빨리 활용하는 소비자)를 중심으로 링글 틴즈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링글 틴즈는 초등 영어 교육 수요가 있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현지어로 사이트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엔 서비스를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