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수도권 중심으로 스타트업 생태계가 쏠리니 부산이 소외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제한된 자원 속에서 ‘원 팀’으로 똘똘 뭉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게 있었습니다. 이 덕에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을 빨리 많이 배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18년 설립, 부산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는 벤처캐피털(VC) 김경찬 NVC파트너스 대표는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슬러시드(BUSAN Slush’D) 2024′에서 현지 창업 환경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난 6년간 부산 스타트업의 수준이 현격하게 올라갔다”며 “스타트업 하나가 성장하는 데 10~20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5~6년 뒤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스타트업 지원 행사인 '부산 슬러시드 2024'가 25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국내외 투자자, 지역 스타트업, 예비 창업가 등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주관하는 ‘부산 슬러시드 2024′가 국내·외 투자자, 지역 스타트업, 예비 창업가 등 1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부산 슬러시드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핀란드 ‘슬러시’에서 파생된 행사로 도시 문제 해결과 창업 활성화를 꾀하는 이벤트다.

호반그룹의 벤처캐피털(CVC)인 플랜에이치벤처스의 원한경 대표는 통상 지역 기반 스타트업의 약점으로 꼽히는 ‘인재’ ‘접근성’ 두 가지를 되레 경쟁력으로 꼽았다.

원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주변에 좋은 대학이 많아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기 좋은데, 부산 역시 지역 16개 대학이 참여하는 부산연합기술지주가 있을 만큼 젊은 인재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또 “스웨덴 말뫼, 핀란드 헬싱키처럼 해변을 끼고 있는 부산은 접근성이 다른 지역보다 앞서나간다”고 덧붙였다.

다만 부산에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박희덕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맨땅의 헤딩이라 할 수 있는 도전정신으로 많은 스타트업이 ‘제로 투 원’ 성장을 이뤄냈지만, ‘원 투 헌드레드’, 즉 유니콘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그러나 “그간 스타트업과 VC 정도만 보였는데, 부산 지역에 특화된 재간접펀드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부산에 글로벌 수준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방증인 만큼 고무적이다”고 평했다.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 결성식’에서 (왼쪽에서 세번째부터)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 박형준 부산시장, 오기웅 중기부 차관이 세리머니하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제공

이날 KDB산업은행이 중소벤처기업부 등과 1000억원 규모의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를 본격 출범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는 자산에 직접 투자하지 않고, 부산 지역에 중점 투자하는 벤처펀드에 출자한다. 동남권 지역 내 전문 투자기관 육성뿐만 아니라 수도권·글로벌 유수 투자 기관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대한민국은 구조적 불균형에 빠져 있는데 이는 혁신 거점을 서울과 수도권이 독점하고 있는 현 체제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면서 “2008년 국내총생산(GDP)이 같았던 미국과 유럽이 지금은 2배 격차로 벌어진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 거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네바다, 아이다호,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애리조나 같은 주(州)가 새롭게 선두로 치고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래 성장 펀드를 시작으로 부산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혁신 거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