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일본 등을 중심으로 불던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며 ‘K컬처(한국 문화)’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K팝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으로 대변되는 K컬처 뒤에는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높이며, 유통하는 많은 손길이 있다.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K컬처 주역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100% K콘텐츠만 가지고 해외로 뻗어나간 플랫폼도 있다. 웨이브아메리카스가 2017년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코코와(KOCOWA)’가 주인공이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담은 플랫폼을 가지고 미주 대륙을 넘어 유럽 등 73개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은 코코와가 유일하다.

코코와는 3만시간에 이르는 한국 드라마, 영화, 리얼리티, K팝 등 콘텐츠를 자체 플랫폼은 물론, 구글TV, 아마존프라임비디오(Amazon Prime Video), 애플TV, 라쿠텐 비키(Rakuten Viki), 로쿠(Roku), 컴캐스트 엑스피니티(Comcast Xfinity), 주모(Xumo), 콕스(COX) 등에 제공하고 있다.

웨이브아메리카스는 201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국 대표 방송사인 KBS, MBC, SBS 3사가 합작 설립한 코리아콘텐츠플랫폼(KCP)의 후신이다. 2022년 토종 OTT인 웨이브가 지분을 투자해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중구에서 만난 박근희 웨이브아메리카스 대표는 "공짜로 나돌던 K콘텐츠에 고급 번역을 입혀 24시간 무료로 제공하니 인지도가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장우정 기자

지난 10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사업차 방한한 박근희(48) 웨이브아메리카스 대표를 만났다. 그는 “K콘텐츠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를 담을 수 있는 용기(그릇)인 플랫폼도 중요하다”면서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인하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 가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영국 유료방송 원천기술 회사인 뉴스데이터시스템 기술팀장, 시스코 시스템즈 비디오 사업부 이사를 지낸 그는 코코와 사업을 위해 2016년 웨이브아메리카 창립 멤버로 합류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로 2017년 7월 코코와를 만들었고, 이후 2018년 1월 공석이었던 대표이사에 올랐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해외에 나가 있는 유일한 K콘텐츠 플랫폼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지상파 3사가 자본금을 50억 원씩 대서 출발한 회사다. 코코와라는 플랫폼 만들고 나서 보니 마케팅 한 번 하면 사라질 정도의 자본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무리 K콘텐츠가 좋아도 미국 사람들은 현지 주류 플랫폼에서 K콘텐츠를 보지, 한국 플랫폼에 구독하진 않는 분위기였다.

무료 해적판(저작권의 허가 없이 무단 복제된 콘텐츠)도 너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화질이 안 좋고, 광고·바이러스도 많고 자막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K드라마는 사전 제작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지화할 시간이 없었던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지상파 3사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수준 높은 번역을 넣어 빠르게 제공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한국에서 드라마가 끝나면 밤 11시인데, 미 동부 시간 기준으로는 아침 9~10시 정도다. 현지 주 시청시간이 오후 6~7시라고 가정하면 그 시간 안에만 번역하면 될 거로 생각했다. 고속 번역의 선두인 아이유노SDI그룹과 손잡고 6시간 안에 고품질 자막을 넣어 콘텐츠를 올렸다.”

─아무리 번역이 좋아도 공짜 해적판이 있다면, 굳이 코코와를 찾을 이유는 없지 않나.

“방송 끝나고 ‘24시간 동안 무료’ 정책을 함께 냈다. 코코와에 와서 콘텐츠를 보면 이상한 광고·바이러스도 없다. 수시로 사이트가 변경되지도 않는다. 고화질, 좋은 자막의 깔끔한 영상을 24시간 안에 공짜로 볼 수 있는데 굳이 해적판을 찾아볼 이유가 없다. 지상파 3사 콘텐츠를 못 가져갈까 봐 우리 시도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과적으론 해적판이 사라지고, 싸구려 K콘텐츠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다.”

그래픽=정서희

─해적판을 찾던 사람들 외에 더 많은 이용자에게 어떻게 존재감을 알렸나.

“‘코코와’ 브랜드 인지도가 필요했다. 코코와를 믿을만하다고 판단했을 때 찾아 들어와서 카드번호도 넣고 구독하지 않겠나. 정식 광고를 하면 좋았겠지만, 한 번만 해도 자본금이 모두 날아갈 정도로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주요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기업간거래(B2B) 시장에 동시에 뛰어든 것이다. 최소한의 콘텐츠 양을 보장해 주고, 신작의 90%를 대는 식의 상품을 만들어 해외 플랫폼에 제공한 것이다. 플랫폼에서 추가 결제를 해야 우리 콘텐츠를 볼 수 있고, 구작까지 보고 싶은 경우엔 코코와로 들어와야 한다.

당시 AT&T가 워너브라더스 등을 인수하는 등 몸집을 불리고 있던 상황이라 경쟁사인 컴캐스트부터 찾아가 첫 협업을 관철시켰다. 컴캐스트가 미국에서 가진 상징성이 레퍼런스(참조)가 되어 아마존, 구글 등 다른 주류 회사들에도 상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자체 플랫폼에만 안주하지 않은 게 인상적인데.

자체 플랫폼도 못 키우면서 B2B를 왜 하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자체 플랫폼을 마케팅할 돈이 없어서였다. 플랫폼 그 자체보다도 브랜드와 상품이 더 중요할 것이란 판단도 작용했다. ‘브랜드 에브리웨어’ 전략이다.

코코와 상품을 우리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어느 플랫폼에서든 똑같이 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파트너를 발굴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국 시장과 다르다. 현지인은 꼭 K콘텐츠를 안 봐도 된다는 점을 기억하고, 어디에서든 우리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도록 사방에 콕콕 찔러넣는 게 필요하다. 한국 콘텐츠 하면 코코와를 떠올릴 만큼의 인지도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아마존 프라임에서 우리 콘텐츠를 봤는데 구작까지 보고 싶다면 우리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코코와는 3만시간에 가까운 콘텐츠 라이브러리(모든 콘텐츠의 시간)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밖에 있는 가장 큰 라이브러리이기 때문에 검색도 바로 된다. 어떤 플랫폼과도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는 이유다. 숫자를 공개할 순 없지만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유료 가입자 100만명 이상을 모으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코코와는 73개국, 4개 언어로 K콘텐츠를 전파하고 있다. /웨이브 아메리카스 제공

─어떤 콘텐츠가 인기가 좋나.

사업 초기인 2017년만 해도 K팝 팬이 K드라마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10대 여성이 주 시청자였다. ‘역도요정 김복주’ ‘학교’ 같은 로맨틱·코미디 드라마 장르로 수요가 거의 쏠려 있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영화 ‘기생충’ 등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K콘텐츠 장르물에 대한 인지도도 커지기 시작했다. 시청 연령층이 넓어진 계기다. ‘런닝맨’이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도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지 한인들을 위한 플랫폼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데.

“자막을 끄고 콘텐츠를 보는 한국인은 전체 10%도 안 된다. 현지 교민을 위한 콘텐츠는 ‘온디맨드코리아’라는 플랫폼에 제공해 대응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에 상품을 대는 것과 같다. 대신 교민들의 수요가 있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추가로 구성하는 식이다. 주류 플랫폼으로 가야지, 교민 사회만 바라보는 것은 시장을 스스로 좁히는 것이다.”

─K콘텐츠에 대한 논의가 많은 상황에서 플랫폼 사업을 이어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플랫폼은 콘텐츠를 파는 통로이자 시장을 이해하는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용기(그릇)다. 73개국에서 4개 언어(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중국어)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난 7년간 누가, 어떤 콘텐츠를 많이 봤는지 데이터를 어마어마하게 쌓아놨다. 이를 통해 플랫폼별로 상품을 구성하니 흑자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좋은 콘텐츠가 없으면 플랫폼이 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다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시청자를 계속 연구해야 그들이 볼 콘텐츠를 댈 수 있다. 플랫폼이 꼭 필요한 이유다.”

─웨이브아메리카스의 현재 고민은 무엇인가.

“코코와는 100% K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한류가 꺼지면 사업이 함께 어려워질 수 있다. 한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K콘텐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펀드 조성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문제는 이것이 제작비 인상 등을 이유로 콘텐츠 투자에만 집중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고품질의 K콘텐츠가 휘발되지 않도록 이를 담아두고 계속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플랫폼에도 투자한다면 콘텐츠 업계에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들이 콘텐츠를 사는 데 대부분의 자금을 투자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