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남짓한 영화에 웃기고, 울리고, 스릴까지 넘친다. '경주기행'은 뻔한 장르물을 벗어나 한 가족의 핏빛 복수극에 고달픈 애환을 담았는데, 이정은을 중심으로 공효진, 박소담, 이연, 변요한 등의 열연이 더해져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상업영화 데뷔작임에도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 김미조 감독의 짜임새 있는 각본도 한몫했다.
'경주기행'(각본감독 김미조,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미시간벤처캐피탈㈜,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스튜디오하이파이브, 공동제작 유포리아이엔티)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 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을 그린다. 데뷔작 '갈매기'로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로, 개봉 전부터 하와이 국제영화제 초청 및 피렌체 한국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빠듯한 살림에도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예쁜 막내딸 경주는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범인 백상현(변요한 분)은 초범 및 우발적 범행 등을 이유로 터무니없는 형량을 받는다. 사형을 기대했던 엄마 옥실(이정은 분)은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고, 이를 계기로 남편까지 잃게 된다.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난 상황, 네 모녀는 8년을 기다린 끝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살인범 백상현을 납치해 경주로 향한다. 딸의 복수를 대신하기로 한 것.
첫째 딸 장주(공효진 분)는 운전을, 법대 출신의 브레인 둘째 딸 영주(박소담 분)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전직 레슬링 선수 셋째 딸 동주(이연 분)는 일단 몸부터 던지면서 똘똘 뭉친다. 엄마 옥실의 지휘 아래 운명 공동체가 되지만, 사실 네 모녀는 살면서 나쁜 짓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살인범을 데려왔지만 초반부터 큰 위기가 찾아오고, 곧 TV에서는 '백상현이 전자발찌를 훼손 후 도주했다'는 뉴스가 보도된다. 결국 네 모녀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거짓 경주여행을 시작하고 또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쏟아진다.
복수극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전개와 소재 등이 있는데, 무거운 권선징악 스토리를 깨고 블랙 코미디에 소동극을 버무려 '장르의 변주'를 완성했다. 백상현이 등장할 때마다 극의 흐름이 바뀌고, 장르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유머와 코미디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 극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김미조 감독은 첫 상업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각본과 연출 실력을 선보였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이러한 장르적 재미가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었다. 딸들은 모두 엄마에게 상처받은 감정적인 연결고리가 있는데, 후반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집중도가 커진다. 첫째 공효진이 복수에 집착해 이성을 잃은 엄마 이정은을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동백꽃 필 무렵'의 모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을 준다. 또 막내딸이 수학여행을 경주로 간 결정적 이유가 셋째 이연과 관련 있는데, 마치 앙숙 같았던 모녀 관계가 후반부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누구 한 명을 꼽기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딸을 잃은 엄마를 연기한 이정은의 오열, 분노, 비통함 등은 가히 압도적이다.
특별출연으로 알려진 변요한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연 못지않은 활약을 했고, 파격 비주얼 변신에 실감나는 살인범 연기로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후반부에는 가족들의 복수극이 마치 이들을 치유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복수극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평생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고 꺼내지 못했을 말과 상처들을 끄집어 낸다. 그 순간에는 아플지 몰라도 끝에는 울림이 있다.
8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1분.<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OSEN=하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