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피가 섞여야 하는 걸까? 가족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다시 한번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기며 마음 뭉클해지는 작품이 나왔다.
영화 '대가족'(각본연출 양우석,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게니우스)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분)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 분)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2013년 상업영화 데뷔작 '변호인'으로 천만을 돌파하고, '강철비' 시리즈를 만든 양우석 감독의 4년 만의 연출 컴백작이다.
6.25 전쟁을 겪은 실향민으로 만둣국 하나로 자수성가를 이룬 함무옥의 인생 목표는 오로지 돈이다. '만둣국 하나 팔 때 400원 남는다'라는 마인드로 지독한 짠돌이처럼 살아가고, 그 덕분에 '조물주 위에 갓물주'가 된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고, 그 충격으로 잘나가던 의대생 외아들마저 출가해 아버지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부자(父子)는 거의 연을 끊고 살면서 제사 때 잠깐 얼굴을 보는 게 전부다.
가족을 잃고 남은 거라곤 돈과 건물밖에 없는 노년의 삶, 어느 날 출가한 아들의 자식이라며 두 손주들이 평만옥을 찾아온다. 무옥은 함씨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게 됐다며 만세를 부르지만, 알고 보니 아들 문석이 정자를 기증해 태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엄마는 이미 사망한 생물학적 아빠였던 것. 무옥은 보육원에서 지내는 두 손주를 데려오기 위해 친자 검사를 진행하고, 하루아침에 아이가 생긴 스님 문석은 자신의 업보라며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치면서 절망한다.
영화는 진짜 부자 무옥과 문석의 이야기로 시작해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진정한 대가족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귀한 민어쌈을 한씨 가문만 먹어야 한다며, 손님들에겐 절대 팔지 않는 고지식한 무옥이, 어린 손주들을 만나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후반부 결정적인 반전에도 핏줄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가족을 찾는 내용도 인상적이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가족의 의미와 형태가 변하는 가운데, 감독은 관객들을 향해 '진정한 가족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핏줄과 제사에 목숨 걸던 함무옥의 변화가 곧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외로운 실향민부터 꼬장꼬장한 구두쇠, 그리고 한없이 인자한 할아버지까지 김윤석의 천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삭발을 감행하며 파격 변신한 이승기는 주지스님으로 열연해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기한 두 사람은 부자간의 정을 나누며 기대 이상의 호흡을 보여줬다.
김윤석, 이승기 외에도 평만옥의 실세이자 함무옥의 아내 방여사(김성령 분), 함문석의 전 여자친구 한가연(강한나 분), 함문석의 수행승 인행(박수영 분) 등 조연 캐릭터도 과하지 않고 조화롭다.
최근 TV 드라마, OTT, 영화까지 불륜, 살인, 조폭 등의 소재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예능마저 이혼 키워드가 넘쳐나는데, '대가족'은 편안한 가족 코미디 겸 휴먼 드라마다. 자극적인 MSG 설정 없이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웃다가 울다가, 마지막에는 평만옥의 만둣국처럼 마음 따뜻하게 극장을 나올 수 있다.
12월 1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106분.
/ hsjssu@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
[OSEN=하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