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봐야 이쁘다. 짧게 봐야 이쁘다. 김백두가 그렇다.”

ENA 수목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의 주인공 김백두(장동윤 분)에 대한 진수母(황석정 분)의 평이다.

김백두는 속 없는 청춘이다. 아버지 김태백(최무성 분)은 태백장사, 첫째 형 김금강(양기원 분)은 금강장사, 둘째 형 김한라(이유준 분)는 한라장사를 역임한 장사 집안의 막둥이다.

‘씨름 신동’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만 해도 본인도, 주변도 백두장사로 이름값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단 위기에 처한 거산군청 씨름단의 있으나마나한 선수로 자리매김이 확실하다. 이에 대해 김백두는 엄마인 마진숙(장영남 분)여사에게 문제의 신숙자 산부인과에서 신생아 시절 바뀌었을 것이란 추측을 내어놓기도 한다.

김백두는 또한 ‘알쓰(알콜 쓰레기)’다. 맥주 글래스의 소주를 물인줄 알고 원샷했다 필름이 끊겼다. 그 망각의 시간 동안 감독에게 전화해 단오대회 장사 못따면 은퇴하겠다는 흰소리를 해대는가 하면 오매불망하던 오두식(이주명 분)의 이름을 동네방네 외치고 다니기도 했다. 저수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최칠성(원현준 분)과 최칠성 생전 마지막 실랑이도 벌였다.

김백두는 헤프기도 하다. 훨씬 잘나가는 팀 후배 임동석에게 알량한 자신의 비기마저 아낌없이 가르쳐준다. 그 임동석이 은퇴를 결정지을 중요한 경기 단오대회의 맞상대가 되었을 땐 짤막하게 후회도 한다. 사망한 연상철(허동원 분) 코치에 대한 씨름단의 ‘빚투’가 시작됐을 땐 250만원 빌려준 사실을 공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호구’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백두는 줏대도, 승부욕도 없다. 단오제 예선 탈락으로 제멋대로 은퇴를 결정했었다. 마진숙 여사는 막둥이 기 살리겠다고 은퇴 축하 떡을 냉장고가 터져라 마련해 두었다. 하지만 오두식이 “여 팀에도, 내 한테도 백두 니가 필요하다.” 한 마디에 대뜸 은퇴를 번복한다.

또 둘째 형 김한라는 백두가 입방아에 오른 승부조작 루머에 대해 말했다. “백두 그노마 승부욕 1도 없는 거 모르는 사람 있나? 내는 시합에 지고 그래 상큼하게 미소짓는 사람은 우리 막둥이 말고 본 적이 없어.” 이에 대해 첫째 형 김금강은 “한결같이 성적이 안나오니까 하는 것 없이 장기말이 됐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런 김백두. 확실히 멀리서 짧게 보기엔 귀여울 수 있지만 가까이, 오래 보기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렇다고 그게 다일까?

김백두는 눈썰미가 좋다. 아무도 못알아본 오두식을 업어치기 한 판 당하고 알아챘다. 20년도 전에 ‘현장 24시’란 프로에서 봤던 추미숙(서정연 분)을 구멍가게 앞에서 마주쳤을 땐 인사도 꾸벅할 정도다.

김백두는 추리력도 좋다. 추미숙을 보고 나서 오두식이 경찰임을 단번에 눈치챈다. 추미숙이 오두식의 오랜 롤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오두식 남편이라 주장하는 민현욱(윤종석 분)과 추미숙의 나이를 추산, ‘민현욱=남편’·‘추미숙=시어머니’란 설정을 무너뜨린다.

김백두는 남을 배려하는 게 일상이고 그럴 때면 상황판단력도 탁월해진다. 어린 시절 아버지 일로 오두식이 친구들의 따돌림을 당했을 때 피구를 핑계로 오두식의 코피를 터뜨려 버렸다. 오두식을 경원하던 아이들은 피 흘리는 두식을 걱정하게 되었고 가해자 악평은 백두가 독차지함으로써 두식의 학교생활에 숨통을 틔워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본인도 승부조작 루머에 휩싸인 주제에 같이 공범 취급 당하는 임동석(김태정 분)을 응원하기 위해 오두식을 따라나서기도 한다. 임동석이 단오제 시합의 진상을 밝히려 한 순간엔 “니 어금니 괜찮나?”며 말문을 막고는 “니 어금니 가는 소리에 내 배신감을 느꼈언 마. 무슨 시합을 그래 진심으로 하노”라며 눙치기도 한다.

그 임동석이 단오제 경기를 복기하며 “형이 이겼다. 형도 알지?” 물었을 때 “그날 니랑 내랑 온 힘을 다해서 경기 치뤘고 심판판정이 그래 난 거는 니가 이긴 게 맞지. 원래 판정까지가 경기다 임마.”란 말로 후배의 죄책감을 덜어주기도 한다.

오지랖도 넓어 본의치 않게 씨름코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된 곽진수(이재준 분)마저 걱정해준다. 경찰 되겠다고 씨름만큼 가망 없는 공부에 도전하려던 주제에. 참고로 김백두의 연봉보다 비싼 차 끌고 다니는 곽진수는 금강장사 4회의 주인공으로 갈 자리는 널려있었다.

그런 김백두가 또 죄 짓고는 못산다. 진수모의 가게를 봐주다 최칠성에게 5만원권을 받고 거스름돈 4만원을 돌려주지 못했었다. 견물생심에 그 4만원을 챙겼었다. 취중 최칠성과의 실랑이도 그 4만원을 돌려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일로 경찰 조사를 받으며 그 삥땅 사실을 털어놓기까지 김백두는 바들바들 무던히도 떨어야 했다.

김백두는 다툼도 싫어한다. 동창회 자리에서 진수가 “천하의 김백두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됐노?”라 대놓고 조롱할 때도 “진수 니 회비 안냈다”며 말을 돌렸고, 후배들이 승부조작 뒷담화를 할 때도 뛰쳐 나가 한 소리 하는 대신 물러나와 혼자 새겼다. 코치 된 진수한테 온종일 구박받고도 진수 엄마한텐 “그래도 진수랑 제일 친합니다”고 안심도 시킨다.

그런 김백두를 오두식이 평한다. “니는 맹탕이지. 넘 생각한다고 제 실속 못 차리고, 허허실실 네가 좋으면 내도 좋다는 만사가 천하태평인 덜덜이 아이가.”

이쯤되면 김백두, 가까이 봐도 예쁘고 오래 봐도 예쁜 편 아닌가? 그래서 3일 방영된 5회 부제가 ‘김백두 그(의) 투명한 속내에 대하여’였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김백두는 씨름을 좋아한다. 장사가 목표긴 하지만 상대 선수와 온 힘을 다해 경기를 치르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이기면 좋고 패해도 유감은 없다.

김백두는 오두식도 좋아한다. 첫사랑이면서 서른 두 해 유일한 연정이었다. 결혼한 줄 오해했을 땐 속은 쓰렸지만 친구로서만 좋아하려 무던히도 애썼고 아닌 걸 알고 나서도 연정보단 우정을 앞세우는 편이다.

그런 유일한 연정 오두식이 김백두의 씨름을 응원하고 나섰다. 그 응원에 힘입어 백두의 소망, 집안의 소망, 동네의 소망 장사 타이틀을 딸 수 있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세상에는 천천히 피는 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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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