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지난 24일 제44회 청룡영화상을 끝으로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1993년 제14회 청룡영화상 진행을 처음으로 맡은 지 30년 만이다. 김혜수는 자신의 가장 오래된 작품인 '청룡영화상' 트로피를 들고 무대를 내려왔다. 당당하게 무대를 지켜온 김혜수는 마지막도 청룡의 여인 그 자체였다.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배우 김혜수가 트로피를 들고 유연석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제공

김혜수는 시상식을 마치면서 "한국 영화의 동향을 알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청룡영화상과의 인연이 무려 30회가 됐다"라며 "서른 번을 하면서 우리 영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진정한 영화인의 연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스물셋인 1993년 배우 이덕화의 파트너로 청룡영화상의 첫 진행을 맡았고, 이날 시상식에서 이명세 감독의 영화 '첫사랑'으로 최연소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 이후 30년간 김혜수는 파격적인 드레스와 영화인 동료를 위한 애정 어린 축하, 매끄러운 진행으로 '청룡의 여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2009년 당시 남자 진행자인 이범수가 롱런의 비결을 묻자 김혜수는 "주변 분들이 지속적으로 양보해 주면 된다"라며 "가끔은 청룡영화상을 내가 주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며 웃었다.

2014년 배우 천우희가 오랜 무명끝에 영화 '한공주'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자, 김혜수는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천우희를 한공주라고 부를 뻔했다"라며 "얼마나 잘했으면 그러겠느냐"라고 칭찬했다. 2010년 배우 윤여정이 영화 '하녀'로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는 "(윤여정) 선생님이 상을 타면 뒤에서 텀블링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다리에 쥐가 나서 못 하겠다"며 본인의 수상처럼 기뻐했다.

김혜수의 드레스는 매년 화제를 불러 모았다. 가슴이 깊이 패거나 등이 훤한 섹시한 드레스로 눈길을 끌더니, 최근엔 우아한 디자인의 드레스를 자주 입는다. 2016년에는 고정관념을 깨고 바지 정장을 입었는데, 이마저도 청룡의 여인답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혜수는 '늘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다'는 세평에 속상해할 때도 있었다. 그는 한 유튜브에서 "20대 때 시상식에 갔는데, 마음이 이상하고 씁쓸했다"라며 "드레스 기사가 나는 것도 싫었다. 난 배우 자격으로 초대 받아 간 것이 아닌데 내 속도 모르고"라고 했다.

30년간 김혜수의 옆은 배우 이덕화를 시작으로, 박중훈, 이병헌, 정준호, 유연석 등이 지켰다.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다. 정준호는 한 방송에서 "김혜수는 영화제 한참 전부터 후보작을 모두 본다"라며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술술 나올 정도로 준비한다"며 그의 진행 자세를 칭찬했다.

김혜수가 청룡의 여인을 은퇴하는 날 배우 정우성은 "김혜수가 영화인에게 줬던 응원과 위로, 영화인과 영화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청룡영화상이 있을 수 있었다"라며 "지난 30년은 청룡영화상이 곧 김혜수이고, 김혜수가 곧 청룡영화상인 시간이었다"라고 했다.

김혜수는 "매년 청룡 무대에서 생생하고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영화인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배웠다"라며 "스물둘 이후로 처음 시상식이 없는 연말을 맞이할 김혜수도 따뜻하게 바라봐 주길 바란다"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