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는 미국 LA에서 4번의 콘서트로 21만4000명을 모았고 333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역대 흥행 기록 6위로, 미국 기준 18년 만에 최대 기록이다. 사진 연합뉴스

최근 몇 년의 팝계는 변혁의 격랑 위에 있다. 산업과 기술, 정치와 사회적 원인이 뒤얽혀 음악계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면서 구매와 사용이 분리되던, 음반과 다운로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 담당자는 과거 음반 홍보를 위해 로비의 대상이 되던 디제이(DJ)와 저널리스트의 자리를 차지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를 포함, 정치적 올바름이 이슈가 되면서 인종,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성 배려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흐름은 우리에게 그저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한 K팝 스타들이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국뽕’에 차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냥 신기하기도 하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격변의 시대를 읽기 위해서는 음악성과 상업성이라는 잣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치, 사회, 기술적 배경에 대한 이해 또한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기준은 당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대중음악’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 또한 기술 및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후반 토머스 에디슨이 레코딩 기술을 발명하면서, 음악에는 악보와 공연뿐만 아니라 음반이라는 세계가 주어졌다. 음반은 악보를 읽기 위한 지식, 공연을 보기 위한 시공간적 제한으로부터 청자를 해방시켰다. 무한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언제 어디서나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었다. 결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곧 음악 외적인 요인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왔던 셈이다.

하지만 많은 대중음악사 관련 서적은 이를 간과해왔다. 역대 명반, 명곡 그리고 뮤지션을 다루는 많은 책은 음악적 시도와 의의, 혹은 차트에서의 기록에만 포커스를 뒀다. 왜 그 음악이 나왔는지, 무엇이 뮤지션에게 그런 고민을 안겨줬을지를 짚어주지 않았다. ‘록 크로니클: 현대사를 관통한 로큰롤 이야기(히로타 간지 저, 한경식 옮김)’는 현대사의 관점에서 음악의 역사를 짚는 책이다. 저자인 히로타 간지는 음악 저널리스트이자 현대사 연구자다. 대학에서도 인문과학을 전공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썼다. “사회사적 관점에서 로큰롤·록의 역사는 1950년대와 공민권운동으로 상징되는 차별 문제, 1960년대 후반은 세계적인 반전운동, 1970년대 이후는 반핵운동으로 상징되는 환경문제나 반아파르트헤이트운동을 기점으로 하는 인권 문제 등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 책의 주인공은 로큰롤 그 자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로큰롤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면서 20세기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았다. 인류가 처음으로 갖게 된 청년문화였으며 대중음악을 예술적 비평의 대상으로 삼게 한 장르이기도 하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갈등의 중심이었으며 보수와 진보의 장벽이기도 했다. 많은 이에게 20세기의 경전과 같았던 셈이다. 이런 로큰롤을, 저자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시대를 따라간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다른 음악과의 상호 작용, 또한 당대와 주고받은 영향을 그린다.

책의 시작은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적 이야기가 아닌, 미국의 레드퍼지 운동으로 시작한다. 냉전의 초기였던 그 당시, 공산주의자를 공직에서 추방하는 운동이다.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로도 퍼졌고 포크에 대한 탄압으로도 이어졌다. 피트 시거 같은 행동주의자들은 공민권, 노동조합 문제를 음악에 담아냈고 이는 당대에서 급진 좌파 취급을 받았다. 또한 19세기 미시시피 삼각 지대에서 활동하던 흑인 뮤지션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으니 이는 곧 인종차별이 심각하던 시대에 흑과 백이 연합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흑인의 R&B(리듬 앤드 블루스)는 새로운 댄스 음악이자 육체의 음악으로 여겨져 백인 청년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에 이르러 주류 청년 문화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로큰롤을 불온한 무엇으로만 여겼다. 저속한 흑인 문화가 고결한 백인 문화를 훼손한다 여겼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아한 공민권운동과도 연관됐다. 로큰롤 붐과 함께한 흑인 스타들은 마틴 루서 킹이 주도한 공민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들을 통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부당함을 알게 된 백인 청년들도 가담했다. 마틴 루터 킹의 명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가 발표된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대행진의 대미를 피터 폴 앤드 메리가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부르며 장식하는 대목은 혼란스럽던 시대에 음악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사건 속 어떤 음악이 등장했고,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재봉선 없이 직조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초기 밥 딜런이 왜 음유 시인이라 불렸는지, 왜 결국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지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비틀스가 당대에 던진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또한 구체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의 차이도 분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히피즘이 태동하고 지배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또한 사실과 맥락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냉전의 산물이기도 했던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우주 시대가 열렸다. 화학 기술 또한 발전하여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화학물질, 즉 마약도 늘어났다. 초기에는 합법적으로 사용되던 LSD의 등장으로 이성과 인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곧 사이키델릭을 탄생시켰고 ‘과학기술이나 효율만을 추구하던 미국 중심의 서구 문명을 비판하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찾는 운동’, 즉 히피 무브먼트의 일부가 됐다.

BTS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켰던 비틀스(사진)에 비견되곤 한다. 사진 셔터스톡

힘을 주어 설명한 1980년대까지의 역사와 단편적 기술 위주로 구성된 201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읽는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비로소 이해한다. 2019년 왜 영국의 ‘타임스’가 BTS와 비틀스를 비교했는지. ‘변방’이었던 영국에서 시작된 비틀스 신드롬이 미국을 급습하고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이어져 결국 음악 역사를 바꾼 일련의 과정과 BTS의 유사성을 깨닫게 된다. “비틀스는 1950년대에 젊은이들의 반항이나 욕구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이던 로큰롤을, 삶의 기쁨을 표현하고 주체적으로 살아야만 붙잡을 수 있는 에너지 가득한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저자의 문장에서, BTS 현상이 대변하는 시대정신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과거의 일을 통해 현재를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가치다. ‘록 크로니클’은 그런 통찰과 새로운 고민을 던진다. 음악에 대해 쓰는 나에게, 한국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이어야 할지, 스포츠 시합을 중계하듯 빌보드와 그래미를 이야기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마음을 다잡게 한다. 예술과 산업, 사회의 삼각함수에 대한 해법을 ‘록 크로니클’은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