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은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약 40여년이 지난 지금, 네 마리 용의 성적표는 뚜렷하게 갈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만은 2000년대 이후 성장 둔화를 겪으며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고, 지난 몇년간 정치적 불안정을 경험한 홍콩은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금융·산업 허브로서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작은 국토에 자원도 부족한 싱가포르가 꾸준히 발전하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상황에도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코노미조선이 그 비결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최인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남아·대양주 팀장 영국 브리스톨대 정치학 박사,전 서강대 동아연구소 HK연구교수, 전 싱가포르대사관 선임연구원,전 인도네시아 국제전략문제 연구소(CSIS) 객원연구원. 최인아

“한국이 아시아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국 기업의 투자 인센티브를 세금 감면 등으로 다양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복잡한 법인 설립 절차로 진입 장벽이 높다는 문제가 있는데, 공무원들이 권위적이라는 평이 많다. 기업과 활발히 소통하도록 전담 부처를 둔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최인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동남아·대양주 팀장은 12월 1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 팀장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싱가포르대사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국내외 업계 관계자들과 직접 소통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허브화 관련 연구를 하면서 업계 관계자들에게 들은 공통적인 불만은 ‘한국은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주요 아시아 거점 국가인 홍콩, 싱가포르 등보다 조세 제도 측면에서 경쟁력이 낮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각각 법인세 최고 세율이 16.5%, 17%지만 한국은 25%다.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도 42%에 달해 홍콩(17%), 싱가포르(22%)와 20%포인트 이상 차이 난다. 어려운 외국인 전문인력 고용, 엄격한 신사업 규제 등도 열악한 기업 환경 요인으로 남아 있는데, 외국 기업 투자 인센티브도 한정적이다. 싱가포르는 자국 내에서 지역 본부 업무를 수행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주거나 5~10% 감면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최 팀장은 “우리나라는 현금 지원 방식에 인센티브 정책이 치중돼 있다”며 “싱가포르같이 세금 감면 등으로 지원 정책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싱가포르에 앞으로도 글로벌 기업들이 계속 몰려들까.

“싱가포르는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좋다. 믈라카해협이 해상 교통 요충지이지 않나. 1965년 독립 후 위치를 활용해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세계 최초로 외자 유치 전담 기관인 EDB(Economic Development Board·경제개발청)를 설립하기도 했다. 초반에 시작한 정책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의 투명성, 낮은 세율,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이중 언어 정책 등으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여겨진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의 문제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없진 않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의 싱가포르 선호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미·중 경쟁이 심화하며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 둔 생산 기지 이전을 모색하고 있다. 대안으로 주목받는 게 동남아 지역이고, 싱가포르는 거점으로 활용되기 좋다. 싱가포르는 이미 있는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사들의 이탈을 막으며, 새로운 기업 유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전통적으로 허브 역할을 맡아온 금융과 원유 거래 등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바이오,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투아스’ 지역에 바이오메디컬 파크를 조성했다. 제약 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국립대학(NUS) 인근에는 바이오폴리스라는 연구단지를 만들어 과학기술청 ‘A☆STAR’과 다국적 기업의 연구개발 센터를 유치하는 등 10여 년간 바이오 허브 클러스터를 조성해왔다.”

인구 600만이 안 되는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앞서가는 점은.

“개방성을 먼저 얘기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자) 도시’를 지향해왔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인종이 다양하다 보니 포용적 사회를 지향한다. 외국인이 활동하는 기반이 좋다는 얘기다. 적은 인구수를 극복하기 위해 우수 인재 영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외국인이라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영입한다. 싱가포르에는 기업을 설립하고자 하는 외국인이 영주권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법인 설립 절차가 간단할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는 외국 스타트업 기업들에 차별 없이 여러 우대 혜택을 제공한다. 2022년 8월에는 새로운 비자 정책을 발표했다. 기존에는 싱가포르에서 고용 비자의 한 종류인 고용패스(EP)를 받은 외국인이 A 회사에 입사하면, A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었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되는 새 정책에서는 이 외국인이 다른 기업에서도 이중으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세계 각지에 있는 우수 인재를 채용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이 더 나은 점은 없나.

“당연히 있다. 우리나라는 지속 가능한 측면이 장점이다. 인구도 많고 내수 시장도 있는데, 토착 대기업이 있어서 그렇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 대기업에 버금가는 토착 기업이 없다. 내수 시장이 없는 싱가포르는 토착 기업을 육성하기보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전략으로 싱가포르가 아시아 허브로 도약한 것은 맞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외국 자본에 매우 취약한 구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정부가 컨트롤할 수 없는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외국 기업 이탈로)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잠재적 요인을 안고 있다.”

한국이 아시아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일할 때 만난 한국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불만은 ‘우리나라는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국은 법인세가 홍콩, 싱가포르보다 높은데 거기에 지방세까지 내야 한다. 소득세도 싱가포르의 두 배에 달한다. 싱가포르는 외국 투자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때 세금을 감면해주는 데 집중하는 정책을 펼치지만, 한국은 현금 지원에 한정돼 있다. 한국이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투자 인센티브를 다양화해야 한단 얘기다. 법인 설립 절차도 매우 복잡하다. 특히 금융은 소비자 보호 관련 규제가 매우 엄격해 해외 금융기관에 진입 장벽이 높다.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규제 말고도 싱가포르는 외국인 투자를 전담하는 부처가 있고, 정부 부처와 외국 기업 간 소통이 매우 활발하다. 기업의 애로 사항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데 노력한다. 반면 한국은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외국 기업들과 소통하지 않고, 오히려 권위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한국 공무원이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세제 등 규제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휙휙 바뀐다. 외국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미·중 갈등 등으로 불안한 지정학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대한 대응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대중 경제 의존도를 축소하거나 공급망 재편 상황을 자국에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것 등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에 편승해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의 안보 협의체로 중국을 견제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짐) 국가 간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호주도 코로나19 진원지 국제 조사로 촉발된 중국과 무역 분쟁 이후 수출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이 배터리 분야 대중 견제를 확대하자 배터리 주원료인 니켈의 최대 생산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배터리 공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이를 전기차 생산과 연계해 자국의 제조업 현대화를 모색한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인도 등과 협력 확대를 추진해왔지만, 대중 의존도 축소 측면에서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뢰할 만한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해 한국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호주와 희토류 협력, 인도네시아와 니켈·배터리·전기차 협력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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