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골프장에서 3년 째 골프장 경기보조자(캐디)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이전에는 한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종합소득세 신고를 위해 세무사 사무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음달 13일까지 골프장 캐디 등 부가가치세 면세 개인사업자 152만명은 사업장 현황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죠.

종전에는 그는 18홀 라운딩이 끝나고 고객들로부터 캐디피를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아왔습니다. 캐디는 골프장 소속 직원이 아니지만, 직원처럼 일하는 '특수고용형태 종사자'입니다.

지난 2021년 7월 정부가 근로자는 아니지만, 근로자처럼 일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단계적으로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요.

수도권의 한 골프장. 기사와는 무관.

정부가 고용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서는 소득 자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간 캐디들은 현금을 받았기 때문에 개인별로 명확한 소득 증명이 과세당국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소득 파악을 위해 국세청은 지난 2021년 11월 실시간 소득파악 제도를 통해 사업장 제공자(골프장)가 캐디의 소득자료를 매월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이와 함께 자료 미제출 혹은 허위 신고시 과태료 부과도 제도화했습니다.

A씨는 "골프장에 기록된 캐디의 근무 시간표를 바탕으로 수입을 추정할 수 있다"며 "그런데 주변 캐디들 중 과세 안내문을 받은 사람도, 받지 않은 사람도 있어 어떤 기준인지 모호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특고 종사자인 캐디는 골프장 근로자가 아닌 인적용역제공자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골프장에서 소속 직원처럼 근무를 당연하게 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직원도 아닌데 직원처럼 부려먹는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죠.

강추위에 손님이 줄어 일을 쉬고 있다는 캐디 B씨는 "명문 골프장의 경우 캐디들을 직고용하는 사례도 많다"면서도 "하지만 대부분의 골프장은 캐디를 채용할 때 근로 계약서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라운딩을 하면서 고객을 응대하는 업무 외에 추가로 해야하는 일들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는지 아닌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당하다'고 언급되는 업무는 골프장에 생긴 '디봇(골프채로 잔디를 쳐서 생긴 푹 파인 흙자국)'을 메꾸는 일입니다. 넓은 잔디밭을 걸어다니며 디봇을 찾고, 이것을 메꾸기 위해 허리를 숙이고 상당한 체력 소모가 된다고 합니다.

이건 고객들의 라운딩을 동반하는 것과는 번외로 골프장에서 시키는 노동이죠. 하지만 골프장에서는 이에 대해 따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각종 명목으로 당번을 서게 하고, 지각을 하면 '벌 당번'까지 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당번 근무에 대한 수당 또한 따로 없죠.

이처럼 사실상 사업장 종업원처럼 일하는 특고 종사자들을 직고용한 사례가 제빵업계에서는 있습니다. SPC그룹이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을 자회사 '피비파트너스'에 직고용한 것이 대표적이죠.

지난 2018년 파리바게뜨의 지침에 따르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 사실상 파리바게뜨 근로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정치권으로부터 빗발친 데 따른 것입니다.

피비파트너스는 해당 합의 직후 협력사 소속이던 제빵기사 5000여명을 고용하고 지난 3년간 임금을 총 39.2% 인상했다고 밝혔습니다. 휴무일도 30% 이상 늘렸습니다. SPC그룹의 사례로 비춰보면, 이 같은 직고용은 캐디들의 처우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을 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국세청은 골프장캐디에 대해 수입금액 미리채움서비스, ARS 무실적 신고시스템 도입 등 신고지원을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신고경험이 부족한 골프장 캐디의 종합소득세 신고지원을 위해서죠. 골프장 사업자가 제출하는 용역제공자료와 실시간으로 연계하여 수입금액 미리채움 서비스도 이번에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고용 환경 개선을 명목으로 그동안 내지 않던 세금을 내게 된 캐디들은 4대보험 보장만큼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당연한 갑질' 개선도 절실하다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