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드로잉, 육필 원고, 사진, 필름, 도서….
기록과 함께 하면 예술은 더 깊어진다. 예술을 향유하다보면 어느 순간 필연적으로 창작의 근원을 파고들 수 밖에 없고, 이 과정을 통해서 작품이 주는 울림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에서 생각, 찰나의 상념까지 속속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이 현대미술 자료를 수집·보존·연구·전시하는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을 서울 평창동에 열었다.
30일 서울시립미술관은 다음 달 4일 신규 분관으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를 연다고 밝혔다. 미술 아카이브 전문시설이 국공립으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까지는 김달진 미술자료박물관 등 민간 차원에서만 아카이브 시설을 만들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작가노트, 드로잉, 육필 원고, 일기, 서신, 메모, 사진, 필름, 도서 등의 예술 기록을 총 22개 컬렉션, 5만7000여건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은 2017년부터 서울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료를 모으고 디지털화, 보존처리 등에 주력했다.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의 탄생은 사실 예정에 없었다. 오랜 기간 방치됐던 7300㎡ 대지엔 원래 가스 충전소가 들어설 계획이었다. 이런 결정이 뒤바뀐 것은 종로구 평창동·부암동 일대를 '자문밖 창의예술마을'로 만들자며 지역 미술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다.
평창동·부암동 일대는 미술관이 밀집해 있고 수려한 자연경관까지 갖췄다. 이 곳에 자리 잡은 문화·예술인도 100명이 넘는다. 종로구 관계자는 "이들이 자문밖 문화 포럼을 꾸려 이 일대를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문화·예술 마을로 만들자고 목소리 낸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미술시설이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에 들어간 공사비는 총 267억원. 연면적은 5590㎡로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 등 총 3개 동을 꾸렸다.
모음동은 미술아카이브의 보존과 연구, 전시 기능이 모인 공간이다. 미술 관련 도서 4500여권을 갖췄고, 50여석 규모의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미술아카이브의 원본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리서치랩으로 꾸렸다. 이 리서치랩에서는 아카이빙 공정을 마친 자료 2만여건을 볼 수 있다.
배움동에서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눔동에서는 학술행사와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홀을 마련했다. 이 곳에서는 어린이 창작체험 프로그램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아키비스트(기록연구사) 직업 체험 프로그램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개관 기념 전시회는 시인이자, 번역가, 비평가, 교육자로 활동했던 작가 최민(1944∼2018)의 컬렉션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이다. 생전 수집한 작품 161점과 자료 2만4924건으로 꾸려졌다. 최민 컬렉션 중 자료 1200여건과 작품 8점, 커미션(주문제작) 작품 5점을 선보인다.
또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의 작가노트와 에스키스(밑그림) 등 1차 자료를 소개하는 '아카이브 하이라이트'전, 옥상정원과 유휴공간을 활용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조각작품과 커미션(주문제작)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전 '세마-프로젝트 에이'(SEMA-프로젝트 A)도 함께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