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일본 도쿄 에비스가든플레이스 센터플라자 지하 1층. 한 매장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묵직한 돌로 만든 카운터가 정면에 보였다. 표면의 거친 결을 그대로 살린 돌 뒤편에는 붉은색과 갈색이 층층이 겹친 흙벽이 펼쳐졌다.
이곳은 멕시코 프리미엄 테킬라 브랜드 클라세 아줄(Clase Azul)이 2024년 7월 문을 연 부티크 매장 '라 티에라(La Tierra)'다. 멕시코 로스카보스와 미국 뉴욕에 이은 세계 세 번째 직영 부티크이자 아시아에서는 처음 문을 연 매장이다.
클라세 아줄이 아시아에서 직접 사업을 운영하는 시장은 일본과 한국 두 곳이다. 일본에는 아시아 지역 본사를, 한국에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현지 유통사를 통해 사업을 한다.
'라 티에라'는 스페인어로 '대지'를 뜻한다. 이름처럼 매장 곳곳을 관통하는 소재도 흙과 돌이다. 정면 카운터에는 일본 가가와현에서 채굴되는 고급 화강암 아지석(庵治石)을 사용했다. 카운터 뒤편의 벽은 일본 미장 장인이 블루 아가베가 자라는 멕시코 토양과 지층을 본떠 만들었다.
'흙'은 클라세 아줄의 브랜드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테킬라의 원료인 아가베가 멕시코 땅에서 자라고, 클라세 아줄을 상징하는 곡선형 디캔터 역시 흙을 빚어 만든 도자기다. 일본의 아지석을 선택한 데도 또 다른 의미가 담겼다. 멕시코에는 세상을 떠난 가족과 지인을 기억하는 전통 명절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이 있다. 일본의 '오봉'과 닮은 문화다. 아지석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고급 묘석으로 사용돼 왔다. 이 돌을 매장의 중심에 둔 것은 죽은 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두 나라의 공통된 문화를 연결하기 위해서다.
마이클 장 클라세 아줄 아시아 최고경영자(CEO)는 "아르투로 로멜리 클라세 아줄 창립자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문화 전반을 존중한다"며 "주요 시장에서는 현지 문화를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회사가 직접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창립자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 일반 매장서 보기 힘든 한정판 한자리에
라 티에라의 양옆의 진열장에는 국내 일반 주류 매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디캔터가 줄지어 있었다. 유방암 인식 개선을 위해 선보인 '핑크 에디션', 멕시코 망자의 날을 기념해 제작하는 '디아 데 무에르토스', 지역 장인들과 협업한 '마스터 아티산' 컬렉션 등 희소성이 높은 제품들이다. 한국과 달리 제품을 별도로 선물 포장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지난 2일부터는 일본 시장을 위해 처음 제작한 한정 컬렉션 '더 댄스 오브 컬쳐스(The Dance of Cultures)' 판매도 시작했다. 일본에서 장수와 행운, 평화를 상징하는 두루미가 날아오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이다. 일본에서 650병만 판매한다. 가격은 세전 23만5000엔(약 205만원)이다.
클라세 아줄의 디캔터는 단순히 술을 담는 용기를 넘어 브랜드를 상징하는 요소로 꼽힌다. 제품마다 서로 다른 색과 문양을 사용하고, 장인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완성한다. 한정판에서는 디캔터 자체에 특정 지역의 문화와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다. 라 티에라 역시 술을 진열해 두고 판매하는 일반적인 주류 매장보다는 이런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공간에 가까웠다.
운영 방식부터 일반적인 주류 판매점과 다르다. 길을 지나가다 들어와 제품을 둘러보고 구매할 수 없다. 모든 방문객을 사전 예약제로 받는다. 한 번 예약할 때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최대 4명이다. 처음 방문한 고객은 브랜드 스페셜리스트의 설명을 들으며 두 종류의 제품을 골라 맛볼 수 있다. 한 세션은 최대 60분간 진행되며 하루 받는 예약은 5~6팀 정도다.
고객의 방문 이력에 따라 테이스팅할 수 있는 제품군도 달라진다. 첫 방문객에게는 플라타와 레포사도, 골드, 블랑코 아후마도, 아네호, 메즈칼 등 정규 제품을 주로 소개한다. 다시 찾은 고객에게는 최상위 제품인 '울트라'를 비롯해 디아 데 무에르토스, 핑크 에디션 등 한정판까지 선택지가 넓어진다. 프라이빗 클라이언트에게는 부티크에 전시된 보다 폭넓은 제품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다.
한 번에 많은 술을 판매하는 대신 한 사람에게 긴 시간을 들여 제조 방식과 제품의 차이를 설명한다. 매장이라기보다 멕시코에서 시작된 클라세 아줄의 이야기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쇼룸에 가까운 셈이다.
클라세 아줄이 아시아 첫 부티크 매장을 일본에 연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시장 규모다. 현재 일본은 아시아에서 클라세 아줄의 판매량이 가장 많은 시장이다. 일본에 매장을 냈지만 한국 소비자 역시 라 티에라의 잠재 고객으로 보고 있다. 한국인의 일본 여행이 활발한 만큼 도쿄를 찾은 소비자가 한국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한정 제품과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경험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장 CEO는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일본과 한국 소비자가 테킬라를 즐기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적은 양을 천천히 음미하며 하이엔드 제품을 선택하거나 마시는 방식을 세심하게 정해 즐기는 경향이 강한 반면, 한국은 병 단위로 주류를 주문하는 이른바 '바틀(Bottle)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한 번에 소비하는 양이 많은 편"이라며 "아직은 식사와 함께 테킬라를 곁들이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클라세 아줄은 이런 한국의 소비 방식을 고려해 지난해부터 국내 레스토랑에 375㎖ 용량의 레포사도를 선보이고 있다. 병 단위 주문에는 익숙하지만 식사 중 한 병을 모두 마시는 데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보다 가볍게 테킬라를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 CEO는 "앞으로 한국에서도 클라세 아줄을 식사와 함께 즐기기 좋은 주류로 알리고 싶다"며 "아시아에서도 테킬라가 바나 클럽, 라운지에서 마시는 술을 넘어 다이닝과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CEO는 "현재 일본이 매출이나 시장 규모 면에서 가장 크기 때문에 아시아 최초 부티크를 이곳에 먼저 열었다"며 "아직 이 부티크를 방문한 한국 고객이 많지 않은 만큼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소비자들이 이곳을 찾아 제품을 직접 경험하고 그 경험을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