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자로와 위고비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 사용자가 늘면서 식품업계에는 덜 먹고 덜 마시는 분위기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몰래 웃고 있는 기업도 있습니다. 동원시스템즈(014820)가 그곳입니다. 이 회사는 캔 참치로 유명한 동원F&B의 자회사인데, 국내 식품 포장재 B2B(기업 간 거래) 분야 1위 업체입니다.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097950)은 미국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에 납품하는 비비고 냉동만두 일부 제품을 소형 포장으로 바꿨습니다. 작은 만두를 6개씩 소포장해서 총 36개를 넣은 제품인데, 현지 반응이 좋다고 합니다. 코스트코는 대표 자체 상품 용량도 줄이고 있습니다. 코스트코는 지난 4월부터 8개들이 베이글 제품을 한 팩씩 팔고 있습니다. 원래는 6개 들이 두 팩씩만 팔았던 제품입니다. 가격은 12개 5.99달러에서 8개 4.99달러로 인상했습니다. 양을 줄이고 가격을 올렸다고 불만인 소비자도 있지만, 코스트코가 이렇게 양 줄이기에 나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GLP-1 계열 비만치료제 때문입니다.
GLP-1 투약자들은 위 배출 속도가 느려져 대용량 식음료를 기피하고 조금씩 나눠 먹습니다. 미국에서 GLP-1 비만치료제를 처방받는 사람이 늘면서, 소식하는 사람들이 늘어 소용량 제품이 잘 팔리는 것입니다. 미국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26년 현재 미국 성인의 11%가 체중 감량을 위해 GLP-1 비만치료제를 처방받고 있습니다. 지난 2024년에는 3%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미국 식품 시장에서 GLP-1 투약자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이들은 먹는 양은 적지만, 구매력은 큰 계층입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인 GLP-1 비만치료제 가격이 높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농심(004370), 오뚜기(007310), 삼양식품(003230) 등 케이(K)푸드 대기업은 물론 일본의 아지노모토 등 글로벌 식품사도 제품을 소용량·낱개 포장하는 추세입니다.
◇ 먹는 양은 줄었지만, 포장 비용은 늘어
식품업체 입장에서 문제는 포장 비용입니다. 예를 들어 2㎏짜리 대용량 비닐봉지를 만들 때와, 그 안을 6개의 소형 트레이와 레토르트 파우치로 쪼갤 때 필요한 포장재의 규모를 감안하면 차이가 큽니다. 단순히 크기만 줄여서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적은 양의 음식을 더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식품 제조사는 포장재 원가 부담이 커지지만, 식품기업에 포장재를 납품하는 B2B 기업은 이득입니다.
동원시스템즈는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444억원으로 전년 동기(384억원) 대비 15% 늘었습니다. 이 회사는 식품 패키징(종합 포장재) 시장에서는 국내 1위 기업입니다. 유리병, 캔, 플라스틱·종이 포장재는 물론이고 알루미늄 포일 등 대부분의 포장재를 취급합니다. 동원시스템즈의 작년 매출은 1조4335억원, 해외 매출은 4885억원으로 수출 비중이 36%에 달합니다.
동원시스템즈는 해외 매출 성장 동력으로 캔, 레토르트 파우치, 기능성 묶음 포장재 등 고부가가치 포장재와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연포장재(식품 용기 위에 씌워둔 벗기는 비닐)를 꼽습니다. 회사는 지난 2019년 인수한 베트남 포장재 업체(TTP)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북미 수산·펫푸드 포장재 수출 거점도 확보한 상태입니다.
식품 대기업 계열 포장재 회사라면 다 수혜를 보지 않겠느냐 싶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이트진로(000080)그룹 계열의 국내 1위 병뚜껑 제조사 삼화왕관(004450)은 올해 상반기 수익성이 악화했습니다. 삼화왕관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8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3.4% 줄었습니다. 삼화왕관 매출은 주류용 병뚜껑(캡)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올해 맥주 출고량이 전년 대비 15.3% 감소하는 등 주류 시장 전체가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류도 소형 포장 추세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WSJ 보도에 따르면 미국 맥주 시장도 소용량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현지 병맥주가 통상 340~450㎖ 용량으로 나오는데, 요즘에는 절반 수준인 약 198~255㎖ 용량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시에라 네바다 브루잉 컴퍼니와 코로나 맥주를 보유한 콘스텔레이션은 135㎖ 용량의 미니 캔·병맥주 판매를 확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