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에게 찬양을. 케이프 포도로 처음 와인을 만들었다."

1659년 2월 2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케이프(현 케이프타운) 정착지를 이끌던 얀 반 리베크(Jan van Riebeeck)는 일기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유럽에서 들여온 포도나무 묘목이 아프리카 대륙 남단에 뿌리내려 첫 와인으로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367년에 이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케이프에서 와인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수개월씩 이어지는 장거리 항해에서 선원들을 괴롭히던 질병 중 하나가 괴혈병이었고, 당시에는 와인이 이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VOC가 케이프에 정착지를 만든 목적도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에 신선한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반 리베크는 1655년부터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포도나무 묘목을 들여와 심었다. 그러나 낯선 기후에서 포도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배 경험 부족으로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농민들에게 포도밭을 만들 것을 독려했지만 처음에는 선뜻 나서는 이도 많지 않았다.

포도나무를 심은 지 약 4년 만인 1659년 2월, 마침내 케이프에서 자란 포도로 첫 와인을 만들었다. 얻은 양은 14L 남짓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반 리베크가 "신에게 찬양을"이라고 기록한 것은 낯선 땅에서도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때 케이프에 들어온 초기 포도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는 품종이 오늘날 남아공을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 '슈냉 블랑(Chenin Blanc)'이다. 프랑스 루아르 계곡이 고향이지만 남아공에서는 수 세기 동안 '스틴(Steen)'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래픽=정서희

슈냉 블랑이 처음부터 고급 품종으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다. 1988년에는 남아공 전체 포도밭 면적의 33.2%를 차지했지만, 높은 수확량과 대량 생산용 포도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다. 오래된 포도나무와 산지별 토양에 주목한 생산자들이 수확량을 줄이고 포도밭의 개성을 살리는 와인을 만들면서 슈냉 블랑의 잠재력이 재조명됐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가 케이프타운 북쪽의 스와틀랜드(Swartland)다.

스와틀랜드는 '검은 땅(Black Land)'이라는 뜻이다. 여름이면 이 지역의 자생 관목 '레노스터보스(Renosterbos)'가 짙은 색으로 변해 들판이 검게 보이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덥고 건조한 기후에 셰일과 사암 등 다양한 토양이 분포하며, 지지대 없이 낮게 키우는 오래된 슈냉 블랑 부시바인(Bush Vine)도 곳곳에 남아 있다.

오늘날 스와틀랜드는 남아공을 대표하는 와인 산지로 꼽히지만, 이 지역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훨씬 전부터 와인을 만들어 온 생산자가 '스와틀랜드 와이너리(Swartland Winery)'다.

와이너리는 1948년 8월 말메스버리 지역 포도 재배 농가 15명이 동네 영화관에 모여 '스와틀랜드 협동조합'을 만든 데서 시작됐다. 당시 현지 와인 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남아공 와인 재배자 협동조합(KWV)'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이 재배한 포도를 직접 압착해 와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1950년에는 조합원이 48명으로 늘었고 2500톤(t)의 포도를 공급받았다. 1977년에는 남아공 협동조합 가운데 처음으로 '스와틀랜드' 브랜드를 직접 병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약 3600헥타르(ha)에 걸친 재배 농가에서 포도를 공급받아 연간 약 200만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이 와이너리가 보다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선보이는 제품군이 '파운더스(Founders)'다. 그중 '스와틀랜드 파운더스 슈냉 블랑'은 슈냉 블랑 100%로 만든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다.

포도 원산지가 스와틀랜드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공식 원산지는 보다 넓은 '웨스턴 케이프(Western Cape)'다. 남아공 슈냉 블랑 특유의 풍부한 과실미를 편하게 즐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아바와 망고 등 열대과일 향에 라임 제스트를 연상시키는 시트러스 향이 어우러진다. 8~10도로 차갑게 마시는 것이 좋으며 식전주나 여름철 샐러드, 초밥 등과 잘 어울린다. 스와틀랜드 파운더스 슈냉 블랑은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공식 수입사는 하이트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