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면업계가 잇달아 용기라면 가격을 인상했지만 신라면과 진라면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봉지라면 가격은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제조사의 원가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가 덜 민감하게 반응하는 용기면 가격을 올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15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농심(004370)은 용기면 18개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6% 올렸습니다. 오뚜기(007310)는 내달 7일부터 용기면 29개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6.7% 인상합니다. 반면 신라면·너구리·진라면 등 양사의 봉지면은 이번 인상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용기면의 원가 부담이 더 큰 상황입니다. 용기면은 플라스틱 용기와 뚜껑, 포장 필름 등 부자재가 추가로 들어가는 만큼 포장재 가격 상승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부자재 비용이 많이 오른 데다 용기면이 봉지면보다 부자재 부담이 더 크다"며 "국민 생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봉지면은 유지하고 용기면만 가격을 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업계에서는 봉지면 역시 원가 부담이 결코 적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봉지면은 팜유와 밀가루 외에도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비닐 포장재와 스프 포장, 묶음 포장 등에 플라스틱이 대거 사용됩니다. 중동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와 나프타 가격, 고환율이 겹치면서 제조원가 부담은 꾸준히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봉지면 가격을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소비자의 가격 체감도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봉지면은 대형마트와 온라인에서 5개 묶음 등 대량 구매가 많아 가격 비교가 활발하고 인상 시 소비자 부담이 즉각적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용기면은 편의점 판매 비중이 높은 간편식 성격이 있습니다. '1+1 행사' 등 판촉도 잦아 상대적으로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이 낮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봉지면은 마트에서 묶음 단위로 많이 판매되기 때문에 소비자가 가격 변화를 더 크게 체감할 수 있다"며 "용기면은 편의점 판매가 많고 프로모션도 자주 진행돼 상대적으로 체감이 덜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업계는 유통 채널 차이가 가격 결정의 직접적인 기준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제조사는 유통업체에 동일한 출고가로 판매하는 구조여서 채널별 판매 방식이 가격 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봉지면 가격 인상의 체감이 더 클 수 있다는 해석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가정 내 상시 비축 수요 등 생필품 성격이 강한 봉지면 가격을 유지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저항이 낮은 용기면에서 일부 원가 부담을 흡수하는 전략인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케이(K)라면 수출 확대도 국내 가격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보고 있습니다. 상반기 라면 수출이 증가하고 주요 업체들이 해외 생산 기지를 확대하면서 과거처럼 국내 가격 인상만으로 수익성을 방어하기보다 해외 판매 확대를 통해 원가 부담을 분산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농심과 오뚜기는 국내 시장 비중이 높아 원가 부담이 누적되면 일부 제품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반면, 해외 매출 비중이 84%에 달하는 삼양식품(003230)은 국내 가격을 동결하고 있습니다. 다만 농심도 전날 2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해외 매출 비중이 40%를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 여부는 원가가 하루이틀 올랐다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비용 부담과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며 "수출 성과와 소비자 부담을 동시에 고려해 어느 품목 가격을 먼저 조정할지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