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별장은 도시를 벗어나 고전을 읽고 철학을 토론하며 인간의 품격을 기르는 인문주의의 공간이었다. 이탈리아 베네토주 발폴리첼라에 있는 빌라 델라 토레(Villa Della Torre)도 그런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대표적인 르네상스 저택이다.

델라 토레 가문은 고대 로마 귀족의 주택인 '도무스(Domus)'에서 영감을 받아 이 건물을 설계했고, 귀족과 예술가, 학자들은 이곳에 모여 와인을 나누며 문학과 철학, 정치와 예술을 논했다. 당시 와인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유를 깊게 만드는 문화의 일부였다.

빌라 델라 토레는 건물 자체가 하나의 철학서를 닮았다. 방문객은 가장 아래에 조성된 어두운 인공 동굴에서 출발해 햇살이 비추는 중앙 안뜰을 지나 가장 높은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무지와 욕망에서 벗어나 이성과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한다.

실내를 장식한 거대한 괴물 형상의 벽난로는 사자와 유니콘, 신화 속 괴물의 얼굴이 담겼다. 이 벽난로는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르네상스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건축과 철학, 예술이 한 공간 안에서 어우러진 빌라 델라 토레는 지금도 발폴리첼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그래픽=손민균

이 역사적인 저택은 오늘날 이탈리아 명문 와이너리 알레그리니(Allegrini)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알레그리니 가문은 2008년 빌라 델라 토레를 인수해 복원했으며, 현재는 와인 시음과 문화 행사, 숙박이 가능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 와인인 '팔라쪼 델라 토레(Palazzo della Torre)' 역시 이 저택에서 이름을 따왔다. 와인의 이름에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을 기념하는 의미를 넘어, 예술과 철학, 와인이 공존했던 르네상스 문화와 발폴리첼라의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알레그리니는 발폴리첼라를 대표하는 생산자 가운데 하나다. 알레그리니 가문은 16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포도를 재배해 왔으며, 와이너리는 1854년 공식 설립됐다. 오늘날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이후 조반니 알레그리니의 자녀인 프랑코, 마릴리사, 발테르가 경영을 이어받으면서다.

특히 프랑코 알레그리니는 발폴리첼라에서 싱글 빈야드(Single Vineyard·여러 포도밭의 포도를 섞지 않고 하나의 특정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방식) 개념을 적극 도입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또한 수확한 포도를 말려 풍미와 당도를 농축시키는 이탈리아 전통 양조 기법인 아파시멘토(Appassimento)를 현대화해 온도와 습도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시설을 구축했다. 또 당시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던 대형 슬라보니아산 오크통 대신 프렌치 오크 배럴 숙성을 적극 도입해 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의 와인을 선보였다. 이러한 혁신은 전통 산지였던 발폴리첼라를 세계적인 프리미엄 와인 산지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알레그리니 와인의 개성은 발폴리첼라의 뛰어난 자연환경에서도 비롯된다. 팔라쪼 델라 토레의 블렌드에 사용되는 대표 포도는 해발 530m에 있는 빌라 카바레나(Villa Cavarena) 포도원에서 재배된다. 남동향의 포도밭은 충분한 일조량을 확보하면서도 알프스 산맥과 가르다 호수의 영향으로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다. 여기에 석회암과 점토가 풍부한 혼합 토양은 배수가 뛰어나고 미네랄이 풍부해 포도에 균형 잡힌 산도와 복합적인 향을 부여한다. 코르비나를 중심으로 코르비노네와 론디넬라 품종이 블렌딩 된다. 포도는 9월 중순 모두 손으로 수확한다.

팔라쪼 델라 토레는 알레그리니의 양조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인이다. 흔히 '베이비 아마로네(Baby Amarone)'라고 불리는데 아마로네를 가볍게 만든 와인은 아니다. 수확한 포도의 70%는 신선한 상태로 9월에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하고, 나머지 30%는 일정 기간 건조한 뒤 12월 18~22도의 온도에서 발효한다. 이후 두 와인을 블렌딩해 최소 15개월 동안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숙성하고, 다시 병입 후 약 7개월간 병 숙성을 거쳐 출시한다.

잔에 따르면 짙은 루비색과 함께 잘 익은 자두와 체리, 블랙베리 향이 먼저 피어난다. 이어 향신료와 고급 오크 향, 발사믹, 다크초콜릿, 감초가 층을 이루며 복합적인 향을 완성한다. 라구 파스타와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 스테이크와 숯불구이, 치킨 카차토라, 숙성 치즈와 궁합이 좋다.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금양인터내셔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