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와인은 낯선 용어가 많아 한국 소비자에게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와인 문화가 성숙해지고 있고, 소비자들은 덜 마시더라도 더 좋은 와인을 찾고 있기 때문에 독일 리슬링도 주목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 모젤 지역의 와이너리 프리츠 하그(Fritz Haag)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인 올리버 하그(Oliver Haag)./변지희 기자

독일 모젤 지역의 와이너리 프리츠 하그(Fritz Haag)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인 올리버 하그(Oliver Haag)는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나라셀라의 와인복합문화공간 도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겸 마스터클래스에서 이같이 말했다. 나라셀라는 7종의 프리츠 하그 와인을 지난 5월부터 수입·유통하고 있다.

그는 "산도가 높고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리슬링은 건강한 음식과 가벼운 음주를 선호하는 소비 흐름에도 잘 맞는다"고 했다. 리슬링은 독일을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다.

프리츠 하그는 독일 모젤 중부 브라우네베르크에 자리한 와이너리다. 1605년 문헌에 처음 등장했으며, 올리버 하그가 2005년부터 아내 제시카 하그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현재 포도밭 면적은 약 29.65헥타르(㏊)로, 대표 포도밭은 브라우네베르거 유퍼와 유퍼-존넨우어다.

프리츠 하그의 포도밭은 모젤강을 따라 형성된 급경사면에 있다. 경사도가 최대 80%에 달해 기계 작업이 어려운 만큼 포도를 손으로 수확한다. 토양은 풍화된 점판암으로 이뤄졌다. 배수가 잘되고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에 방출해 서늘한 기후에서도 포도가 익도록 돕는다.

올리버 하그는 "리슬링과 가파른 경사면, 수작업이 여러 세대에 걸쳐 프리츠 하그를 구성해 온 요소"라며 "점판암 토양이 와인에 모젤 특유의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프리츠 하그는 드라이한 트로켄부터 오프드라이, 카비넷, 슈페트레제, 아우스레제와 귀부 와인까지 리슬링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을 생산한다. 발효에는 자연 효모를 사용하고 와인의 성격에 따라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와 오래된 대형 오크통을 함께 활용한다. 새 오크에서 나오는 바닐라나 토스트 향이 리슬링의 과실과 산도, 토양의 특성을 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효모 앙금과 접촉하는 기간도 길게 가져가 질감과 복합미를 더한다.

최상급 포도밭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카비넷이나 슈페트레제를 계속 생산하는 것도 프리츠 하그의 특징이다. 고가의 드라이 와인에만 집중하기보다 독일 모젤의 전통적인 리슬링 스타일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올리버 하그는 "우리는 일부 고가 제품만 생산하는 부티크 와이너리가 아니다"라며 "좋은 포도밭에서 나온 포도로 합리적인 가격의 카비넷과 슈페트레제를 만드는 것이 독일 리슬링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프리츠 하그의 카비네트와 슈페트레제는 알코올 도수가 7∼8도대로 낮지만 높은 산도 덕분에 장기간 숙성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낮은 알코올 도수와 단맛·산도의 균형을 한식과의 접점으로 꼽았다. 그는 "슈페트레제의 당도는 마늘이나 양파에서 나오는 알싸한 맛을 부드럽게 잡아준다"며 "매운맛과 향이 복합적인 한국 음식에도 잘 어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차갑게 마시면 산도와 생동감이 강조되고, 온도가 조금 오르면 과실 풍미와 질감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는 모젤 와인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늘한 산지인 모젤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포도가 과거보다 안정적으로 익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평균 기온 상승보다 우박과 서리, 폭우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리버 하그는 "과거에는 10월 중순에 수확했지만 최근에는 9월 중순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해가 있다"며 "짧은 기간에 수확을 마치기 위해 인원을 늘리고, 카비넷도 예전보다 일찍 수확해 모젤 와인이 가진 산도와 신선함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와인 시장이 위축되고 젊은 세대의 음주량이 줄어드는 상황을 위기이자 기회로 봤다. 소비자들이 값싼 와인을 많이 마시기보다 생산지와 품질이 분명한 와인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올리버 하그는 "과거 독일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며 "그러나 독일 와인의 품질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좋은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리슬링이 다시 각광받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