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들이 원가 부담에 잇달아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 반면 상반기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을 인하했던 라면업계는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가격 인상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서울 한 대형마트 라면 진열대 모습. /뉴스1

24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097950)사조대림(003960), 오뚜기(007310), 하림(136480), 롯데칠성(005300)음료 등은 최근 주요 제품 가격을 잇달아 인상했다.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과 국제 곡물 가격 및 포장재 원료인 나프타 가격 상승, 물류비 및 인건비 증가 등을 가격 인상 배경으로 지목했다.

반면 라면업계는 아직 가격 인상 계획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하반기 원가 부담이 본격 반영되면 가격 조정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라면업계는 지난해 한 차례 가격을 올린 후 올해는 가격을 낮췄다. 농심(004370)은 지난해 3월 신라면 등 라면·스낵 17개 브랜드의 출고가를 평균 7.2% 인상했고, 오뚜기도 같은 해 4월 진라면 등 라면 27개 제품 가격을 평균 7.5% 올렸다. 삼양식품(003230)과 팔도 역시 일부 제품 가격을 조정했다.

그러나 올해 3월 청와대와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에 발맞춰 농심과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는 일부 라면 제품 가격을 최대 14.6% 인하했다. 정부가 식품 물가 안정을 위해 식품업계의 가격 인하와 원가 절감 노력을 요청했고, 라면업계가 이에 호응한 결과다.

문제는 이후 원가 환경이 계속 악화했다는 점이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나프타 가격이 이달 들어 20% 이상 급등하면서 플라스틱 용기와 필름 등 포장재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여기에 밀과 팜유 등 주요 원재료 가격과 환율 부담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올해 5월 수입 원자재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8.9% 상승했고, 중간재 가격도 26.8% 올랐다.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률은 3월 40.1%, 4월 33.0%, 5월 38.9%를 기록하며 3개월 연속 30%를 웃돌았다.

특히 식품업체들은 대부분 원·부재료를 반기 또는 연간 단위로 계약하는 만큼 상반기에 확보한 재고가 소진되는 하반기부터는 높아진 계약 단가가 생산 원가에 순차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라면업계도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고 원자재와 인건비 등 비용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며 "하지만 라면 가격은 소비자들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직 가격 인상을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환율과 국제 유가, 원재료 가격 등 부담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는 전략적 구매 등을 통해 원가 부담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 해외에서 가격 올려 대응... "하반기는 지켜봐야"

라면업계는 해외 시장에서의 인기를 통해 내수 시장에서의 어려움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 농심은 올해 국내에서는 가격을 인하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미국과 일본에서 현지 판매 가격을 평균 10% 안팎 인상했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10월 미국 판매 제품 가격을 올렸다. 해외에서는 미국 관세 정책 등의 영향으로 인상이 불가피했고, 케이(K)라면의 브랜드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가격 인상이 가능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과 소비 위축으로 가격 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농심은 미국 가격 인상 효과와 해외 판매 증가에 힘입어 국내 가격 인하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농심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법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1% 증가했다. 삼양식품은 해외 매출 비중이 80%를 넘어서며 글로벌 판매 호조가 전체 실적을 여전히 견인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라면 수출액은 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라면 수출은 상반기 9억4000만달러(약 1조3900억원)를 기록하며 지난해보다 27.9% 증가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원가 부담이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어질 경우 국내 라면가격도 하반기에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조용철 농심 대표는 지난 5월 신라면 출시 4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가격 인상은 시장 상황과 소비자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할 사안"이라면서도 "중동 분쟁 등의 영향으로 원·부자재 가격과 물류비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라면업계 관계자는 "K라면 위상이 커지면서 수출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내수 시장 수익성을 유지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며 "당장 인상 계획은 없지만 하반기 원가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돼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