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대표적인 주정강화 와인인 마르살라(Marsala)는 '승리의 와인(Victory Wine)'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르살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배경에는 뜻밖에도 영국 해군과 나폴레옹 전쟁의 역사가 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이어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은 지중해 해상권 확보를 위해 시칠리아를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했다. 당시 영국 해군의 영웅인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 역시 시칠리아를 오가며 작전을 지휘했고, 팔레르모와 마르살라 등 항구 도시는 영국 함대의 주요 보급 기지 역할을 했다.

마르살라는 원래 시칠리아 서부 지역에서 생산되던 향토 와인이었다. 그러나 1773년 영국 상인 존 우드하우스(John Woodhouse)가 이를 영국에 소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우드하우스는 마르살라가 당시 영국에서 인기를 끌던 포트와 셰리에 버금가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그는 포도 증류주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방식으로 장거리 항해에 적합한 와인으로 발전시켰다.

주정강화 과정을 거친 마르살라는 장기간 항해에도 품질이 안정적으로 유지됐고 영국 상인과 해군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공급되고 영국군이 연승을 하면서 '승리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영국 해군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마르살라 역시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마르살라는 스페인 셰리, 포르투갈 포트, 마데이라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주정강화 와인으로 꼽힌다. 일반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화 숙성을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마르살라는 셰리의 견과류 풍미와 포트의 풍부한 질감, 마데이라의 안정적인 숙성 특성을 두루 갖춘 와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픽=손민균

1880년 설립된 카를로 펠레그리노(Carlo Pellegrino)는 이러한 마르살라 산업의 전성기에 탄생한 대표 생산자다. 창립자인 파올로 펠레그리노(Paolo Pellegrino)는 당시 급성장하던 마르살라 산업의 잠재력을 보고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와이너리는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족 경영을 이어오며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마르살라 생산자로 자리 잡았다.

카를로 펠레그리노는 영국 상인들이 성장시킨 산업을 시칠리아 생산자의 손으로 계승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현재까지도 마르살라의 전통 양조법을 유지하면서 세계 시장에 시칠리아 와인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카를로 펠레그리노는 최근 마르살라의 재평가를 이끄는 생산자로도 꼽힌다. 과거 마르살라는 티라미수나 소스에 사용하는 요리용 와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펠레그리노는 마르살라를 셰리와 포트, 마데이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급 주정강화 와인으로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실제로 와이너리는 전통적인 마르살라뿐 아니라 장기 숙성 리제르바(Riserva), 버진(Vergine) 스타일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다. 마르살라가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식전주와 식후주로 즐길 수 있는 복합적인 와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마르살라 세미세코(Marsala Semisecco)'는 그릴로(Grillo), 카타라토(Catarratto), 인솔리아(Inzolia) 등 시칠리아 토착 품종을 사용한다. 포도는 9월 중순 완숙 상태에서 수확하며 20~22℃에서 발효한다. 이후 알코올을 첨가해 주정강화를 진행한 뒤 포도즙을 천천히 졸여 만든 농축액인 '모스토 코토(Mosto Cotto)' 등을 더해 풍미를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일반 화이트 와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호박빛 색상과 캐러멜, 건과일 풍미가 형성된다. 이후 오크 배럴에서 최소 1년 이상 숙성한다.

마르살라는 규정상 당도에 따라 세코(Secco), 세미세코(Semisecco), 돌체(Dolce)로 구분된다. 세코는 드라이한 스타일, 돌체는 디저트 와인에 가까운 달콤한 스타일이며, 세미세코는 그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세미세코는 마르살라 가운데 비교적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로 꼽힌다. 드라이한 세코는 산화 숙성에서 비롯된 견과류 풍미가 강해 초보자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돌체는 단맛이 강한 편이다. 반면 세미세코는 적당한 단맛과 산미, 오크 숙성에서 비롯된 풍미가 균형을 이루며 마르살라 특유의 개성을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와인은 짙은 호박색이다. 코에서는 모과와 오렌지 껍질 향이 말린 살구 향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풍부한 균형을 이룬다. 입안에서는 은은한 감귤 향이 신선함을 더한다. 적당한 단맛과 산화 숙성에서 오는 복합미가 균형을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주정강화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하이트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