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을 품는다. 몰래 숨겨둔 군것질거리일 수도 있고, 장난기 가득했던 그 시절의 작은 일탈일 수도 있다. 호주의 신생 와인 브랜드 '돈 텔 맘(Don't Tell Mum)'은 그런 장난기 어린 기억에서 출발했다. 이름부터 '엄마에겐 비밀'이라는 이 브랜드는 어린 시절 부모의 와인 저장고를 몰래 훔쳐보던 남매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었다.

와인은 종종 부담스럽고 복잡한 술로 여겨진다. 품종과 산지, 빈티지부터 양조 방식까지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고, 가격이 비쌀수록 신중하게 격식을 차려 마셔야 한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돈 텔 맘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밀며, 함께 마시는 즐거움이라는 와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브랜드의 설립 배경에는 새로운 젊은 소비층을 사로잡으려는 글로벌 와인 산업의 세대교체 흐름도 맞물려 있다. 브랜드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부모 세대이자 호주의 대표적인 컬트 와이너리인 '몰리두커(Mollydooker)'를 살펴봐야 한다. 창립자 세라 마르퀴스(Sarah Marquis)가 이끈 몰리두커는 특유의 묵직한 바디감과 강렬한 과실미, 높은 알코올 도수를 앞세워 전 세계 평론가들과 와인 마니아들을 사로잡으며 독보적인 팬덤을 구축한 명가다. 특히 호주 쉬라즈 스타일을 세계 시장에 각인시킨 핵심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래픽=정서희

가문의 명성이 깊어질수록 자녀 세대에게는 그 거대한 후광이 넘어야 할 높은 벽이자 과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세라의 자녀인 홀리(Holly)와 루크(Luke) 남매는 부모의 그늘에 안주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부모 세대가 구축한 품질과 양조 철학은 계승하되, 젊은 세대가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와인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엄마에겐 비밀'이라는 위트 있는 브랜드명 역시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어릴 적 우리는 포도밭 주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와인 양조의 기본을 배웠다. 좋은 와인이 되기 위해 꼭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진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와인은 마치 크고 무서운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래서 우리는 돈 텔 맘을 시작했다. 쉽고 재미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정해진 규칙은 없고, 그저 좋은 와인만 있으면 된다."

이들은 소비자와의 소통 방식에도 현대적인 감각을 입혔다. 시각을 자극하는 톡톡 튀는 디자인의 라벨을 적용하는 한편, 병에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소비자들이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나 추억을 익명으로 공유할 수 있는 디지털 소통 창구를 마련했다. 이는 와인을 단순한 음용 주류를 넘어 젊은 소비층의 놀이 문화와 연결해 소비자 가까이 끌어오는 이들만의 독특한 마케팅 방식이다.

제품의 핵심인 레드 와인은 쉬라즈(Shiraz) 품종 100%로 양조된다. 와인의 생산지는 남호주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맥라렌 베일(McLaren Vale)이다. 애들레이드 남쪽 플뢰리외 반도(Fleurieu Peninsula)에 위치한 이 지역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서쪽으로는 세인트빈센트 만이 접해 있어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따뜻한 낮과 서늘한 밤이 반복되는 환경이 형성된다. 대담한 과실 풍미와 깊은 구조감을 가진 프리미엄 쉬라즈를 생산하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

양조 과정에서는 원재료의 신선함과 정밀한 공정을 엄수한다. 포도는 산미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기온이 낮은 이른 아침에 수확하며, 수확 직후 와이너리로 곧바로 이동해 기계로 파쇄된다. 이후 효모를 투입해 발효를 진행하며, 이 과정에서 풍부한 색상과 성분을 추출하기 위해 일정 기간 껍질과 함께 담가두는 침용 단계를 거친다. 발효가 완료되면 껍질과 주스를 분리해 압착하며, 이후 안정화 과정을 거친 뒤 와인의 스타일과 필요에 따라 오크 숙성이나 산소 접촉 등의 공정을 거쳐 최종 병입된다.

'돈 텔 맘 맥라렌 베일 쉬라즈'는 모태가 된 몰리두커 특유의 압도적인 묵직함 대신, 젊은 취향에 맞춘 유연한 밸런스를 선택했다. 블랙베리와 체리의 진한 과실 아로마를 중심에 두고 다크 초콜릿, 바닐라의 풍미가 겹겹이 쌓이지만, 타닌을 한층 부드럽게 정제해 첫 모금부터 편안한 음용감을 선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음용 방식의 장벽도 과감하게 허물었다. 남매는 소비자들에게 "마시고 싶은 대로 마셔라"라고 제안한다. 단일 품종 고유의 깊은 맛을 온전히 음미하는 전통적인 시음 방식도 좋지만, 와인을 차갑게 칠링해 탄산수나 위스키를 섞어 캐주얼한 와인 칵테일 형태로 즐기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파스타 등 일상적인 요리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돈 텔 맘 맥라렌 베일 쉬라즈는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신대륙 레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씨에스알와인 주식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