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기업들이 잇달아 해외 현지 법인 설립에 나서고 있다. 케이(K)푸드 열풍을 타고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단순 수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지 판매와 마케팅, 연구·개발(R&D) 기능까지 수행하는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식품기업들이 해외 법인을 신설하거나 현지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과거엔 국내 생산 식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판매·유통·제품 개발 기능을 현지에 구축하는 방향으로 해외 사업 전략을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식품업계가 해외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는 배경엔 국내 시장의 수익성 한계가 있다. 고물가·고환율 시대에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원가 부담이 누적된 만큼 식품업계는 이번 6·3 지방선거 이후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가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어 높은 가격 인상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재료와 포장재, 물류비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지만, 식품은 소비자 체감도가 높은 품목이라 가격 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선거가 끝난 후 업계 전반적으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 같은 환경은 식품기업들이 해외 사업 확대에 더욱 공들이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국내 시장에선 물가와 소비자 부담 등을 고려해야 해 가격 인상에 제약이 따르는 반면, 해외 시장에선 현지 경쟁 상황과 수요에 맞춰 보다 유연한 가격 전략을 펼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식품기업들은 해외 법인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격 결정권 확보뿐 아니라 현지 유통·판매망 구축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농심(004370)은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이달 러시아 판매 법인을 출범할 예정이다. 러시아 법인은 현지 시장 공략은 물론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로 영업망을 확대하는 거점 역할도 맡는다.

빙그레(005180)는 지난해 호주 법인을 설립했다. 기존 직수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밀착형 영업과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호주를 오세아니아 시장 공략을 위한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라면을 구입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업계에선 K푸드가 수출 확대를 넘어 현지화 경쟁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K푸드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국가별 소비자 취향과 식문화는 여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현지 소비자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역량이 중요해진 것이다.

오뚜기(007310)는 지난달 일본 도쿄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오는 9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가는 일본 법인은 라면과 소스, 참기름 등을 판매하는 동시에 현지 맞춤형 제품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삼양식품(003230)은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네덜란드에 판매·물류 법인을 세운 데 이어 최근엔 R&D 거점도 구축했다. 이를 통해 식물성 원료 기반 식품과 기능성 식품 연구를 강화할 방침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과거 해외 사업이 수출 물량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엔 현지 소비자와 유통망을 직접 관리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해외 법인은 판매 조직을 넘어 브랜드 육성과 현지 제품 개발을 위한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해외 법인 설립을 통한 K푸드 진출은 수출 확대 다음 단계인 현지화로 접어든 것"이라며 "해외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현지화는 필수다. 앞으로 식품기업의 경쟁력도 현지 시장에 얼마나 뿌리 깊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