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주가 미국 주류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음주 인구 감소 속에 저도주·이색 제품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케이(K)컬처 확산을 타고 판매 채널과 소비층을 빠르게 넓히는 모습이다.
2일 글로벌 주류 시장 조사 업체 IWSR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주류 시장 판매량은 전년 대비 5% 감소했다. 맥주는 6%, 와인은 6%, 스피리츠는 4% 줄었고, 성장 동력으로 꼽히던 RTD(즉석음용주) 시장도 약 1% 감소했다.
반면 국가별 전통주를 뜻하는 '내셔널 스피리츠(National Spirits)' 카테고리 판매량은 1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약 80%를 한국 소주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주류 시장 전반이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의도적 음주 절제)' 트렌드로 위축되는 가운데, 소주만 역주행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소주가 더 이상 교민 중심 소비에 머물지 않고 K푸드·K콘텐츠와 결합한 문화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과거 한식당 위주였던 소비가 최근에는 대형마트와 일반 바(bar), 레스토랑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매년 9월 20일을 '소주의 날'로 지정했다. 국내 업체들의 현지 마케팅도 한층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 하이트진로(000080)는 최근 미국 프로야구팀 LA다저스와 협업한 한정판 제품을 출시했다. 참이슬 후레쉬와 과일 리큐르 제품군으로 구성됐고, 다저스 협업 디자인이 적용된 소주잔 패키지도 선보였다.
롯데칠성(005300)음료는 순하리 처음처럼(순하리)을 앞세워 미국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미국 내 순하리 판매 채널은 2만3000여 개를 넘어섰다. 지난 2023년 말과 비교하면 8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미국 주요 대학 풋볼 경기장, 프로축구 LA갤럭시 홈구장 등에서 순하리 부스를 운영하는 행사도 진행했다.
이는 국내 소주 시장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국세청 통계 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22년 326만862kL, 2023년 323만7036kL, 2024년 315만1371kL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 빈도 자체가 줄고 회식·단체 모임 문화도 예전보다 적어진 결과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5 주류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2024년 기준 한 달에 1회 이상 주류를 소비한 사람의 월평균 음주 빈도는 8.8일로 전년(9.0일) 대비 줄었다. 하루 평균 음주량도 6.7잔에서 6.6잔으로 소폭 감소했다. 특히 20대의 음주 빈도와 소비량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주류업계는 기존 소주 브랜드를 리뉴얼해 시장 침체에 대응하는 상황이다.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거나, 알코올 도수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이색적인 향과 맛을 입힌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MZ(밀레니얼+Z세대)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최근 대표 소주 브랜드인 '진로'의 리뉴얼 제품 '올 뉴 진로'를 출시했다. 기존 한자 중심 로고를 한글로 바꾸고, 두꺼비 캐릭터를 3D 이미지로 바꾸는 등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두쫀쿠(두바이쫀득쿠키), 버터떡 등 인기 디저트를 접목한 이색 소주도 연이어 선보였다.
롯데칠성음료는 새로 살구, 다래에 이어 오미자 과즙을 더한 과일소주를 출시했다. 패키지 디자인도 3년 만에 리뉴얼했다. 새로 캐릭터인 '새로구미'의 꼬리를 상징하는 병뚜껑 엠블럼에 민트색을 강화했다. 진로와 새로 모두 알코올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췄다. 반면 처음처럼은 20주년을 맞아 출시 때와 동일한 20도의 '처음처럼 클래식'을 선보였다. 정통 소주 수요를 겨냥하는 제품이다.
지역 소주 업체들도 신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생존 경쟁에 뛰어들었다. 선양소주는 소비자 부담을 낮추고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990원 '착한소주 990'을 한정 출시했다. 국내 최초로 말차 풍미를 더한 '선양 말차'를 내놨고, 오크 원액을 활용한 '선양오크'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었다.
한편, 국내 주류 업체 실적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업은 여전히 소주다. 하이트진로 지난해 전체 매출(별도 기준, 2조2404억원)에서 소주(1조3395억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60%다. 롯데칠성음료의 지난해 주류 부문 매출은 7527억원으로 이 중 소주(4204억원) 비율은 약 56%로 절반을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