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구릉 지대인 발폴리첼라는 베로나와 베네치아 귀족들이 전원 저택을 짓고 머물던 와인 산지다. 베네치아 귀족들은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15~16세기 이후에는 본토 농업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발폴리첼라를 비롯한 베네토 지역에는 '베네토 빌라'로 불리는 귀족 빌라 문화가 형성됐다.

당시 저택들은 단순한 휴양용 별장이 아니었다. 귀족들이 여름철 머물며 사교를 즐기는 동시에 포도밭과 농장을 운영하고 와인을 생산하던 수익 거점이기도 했다. 르네상스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영향을 받은 빌라들은 기하학적 대칭과 비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파사드가 특징이었다. 고대 신전 양식을 재해석한 본채에서는 귀족들의 사교와 문화 활동이 이뤄졌고, 회랑 형태로 연결된 별채에는 곡물 창고와 와인 셀러, 농업 시설이 자리했다.

발폴리첼라에서 와인 산업이 발전한 것도 이 같은 지리적·문화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이 지역은 일교차가 크고 건조한 공기가 흐르는 환경을 지녔다. 생산자들은 수확한 포도를 통풍이 잘되는 다락이나 건조실에 몇 달 동안 보관하며 수분을 서서히 증발시켰다. 포도를 말려 당분과 풍미를 농축하는 이 방식이 아파시멘토다. 이를 통해 탄생한 대표 와인이 이탈리아 프리미엄 레드 와인의 상징으로 꼽히는 아마로네다.

아마로네가 발폴리첼라의 화려한 얼굴이라면, 리파소는 보다 실용적인 지혜에서 출발한 와인이다. 과거 지역 농민들은 아마로네를 만들고 남은 포도 껍질에도 여전히 향과 풍미가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본 발폴리첼라 와인을 이 포도 껍질 위에 다시 통과시켜 재발효했고, 이 방식이 오늘날 리파소의 기원이 됐다. 리파소는 이탈리아어로 '다시 지나가다'라는 뜻이다.

그래픽=손민균

처음에는 남은 부산물을 활용하는 실용적 방식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리파소는 발폴리첼라의 또 다른 대표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재발효 과정을 거친 와인은 일반 발폴리첼라보다 색이 짙고, 질감은 풍부하며, 향신료와 말린 과일의 뉘앙스가 더해진다. 아마로네보다 부담은 덜하지만 일반 발폴리첼라보다 깊이 있는 스타일 때문에 '베이비 아마로네'로 불리기도 한다. 리파소는 2007년 이탈리아의 정식 DOC 등급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가는 생산자 중 하나가 니콜리스다. 니콜리스는 베로나 인근 산 피에트로 인 카리아노에 자리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1951년 설립 이후 발폴리첼라 토착 품종을 중심으로 와인을 만들어 왔다. 지역의 전통 양조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무게감보다 균형감과 음식 친화성을 강조하는 생산자로 알려져 있다.

대표 와인은 '세칼 발폴리첼라 리파소 클라시코 수페리오레'다. 코르비나 70%, 론디넬라 20%, 몰리나라 5%, 크로아티나 5%를 블렌딩한다. 포도는 10월에 수확하며,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토착 효모를 사용해 12일간 자연 발효한다. 동시에 아마로네 생산을 위해 별도로 선별한 포도를 전용 건조실에서 3~4개월간 말리는 아파시멘토 과정이 진행된다.

늦겨울 아마로네 양조가 끝나면 남은 포도 껍질에 기본 와인을 더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8일간 다시 자연 발효시키는 방식이다. 이후 오크 배럴에서 16개월 숙성하고, 병입 후 4개월 추가 숙성을 거쳐 출시된다.

잔에 따르면 짙은 루비 레드빛이 눈에 들어온다. 코에서는 잘 익은 체리와 자두, 은은한 향신료 향이 이어진다. 입안에서는 부드러운 타닌과 균형 잡힌 질감이 느껴진다. 전채 요리와 다양한 고기 요리, 치즈와 두루 어울린다. 니콜리스 세칼 리파소는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레드 와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트렌드인터내셔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