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수출하는 제품명에 한국어를 그대로 쓰거나 한국어 발음을 음차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만두(Mandu)'와 'Buldak(불닭)'이 있습니다. 현지 소비자 접근성을 고려해 영어·현지어를 패키지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케이(K) 문화·콘텐츠 확산으로 한글 자체가 정통 한국 제품을 증명하는 요소로 자리 잡는 모습입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1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해외 시장에선 한국어로 된 패키지와 한글 브랜드명이 K푸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엔 현지 소비자에게 생소한 한국 제품을 이해하도록 돕고자 영어·현지어로 적힌 패키지로 수출했다면, 최근엔 오히려 한국어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분위기입니다.

현재 미국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싸만코 클럽팩'이 대표적입니다. 싸만코 클럽팩은 빙그레 대표 아이스크림 붕어싸만코를 초코·딸기·팥맛 등 각각 4개씩 총 12개를 묶어 구성한 제품입니다. 빙그레는 지난해 말 코스트코 요청에 따라 제품 패키지에 한글 '싸만코' 표기를 영문 브랜드명 'SAMANCO' 아래에 같은 색상으로 추가했습니다. 한국어가 적혀야만 진짜 한국 제품이라는 현지 소비자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해외 유통업체들은 한국어 표기가 들어간 패키지를 선호하거나 미국 코스트코처럼 직접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 패키징 전문 매체 패키징 스트래티지스(Packaging Strategies)는 CJ제일제당(097950) 비비고 제품 패키지 재단장(리뉴얼) 과정에서 한글 로고와 한국적 요소를 강조한 부분을 집중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비비고 만두 제품 패키지가 기존보다 한글 브랜드명을 더 눈에 띄게 배치하고 '밥상(Bapsang)'에서 영감을 받은 원형 디자인으로 한국 식문화 이미지를 강화한 점을 주목한 것입니다.

최근엔 해외 식품·라이프스타일 매체들도 현지에서 판매되는 K푸드 제품명을 번역하기보다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불닭볶음면입니다. 해외 진출 초기엔 'Hot Chicken Flavor Ramen'으로 소개됐지만, 최근 외신 보도엔 이를 'Buldak(불닭)'이라는 브랜드명으로 다루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식 만두를 'Korean dumpling'이 아닌 'Mandu'라는 명칭으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픽=손민균

◇ 한글 마케팅으로 해외 시장 승부 보는 韓 식품기업들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 식품업계도 한국어를 통한 브랜딩 전략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농심(004370)은 일본 시장에서 신라면·너구리·툼바 등의 제품명을 한글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 하라주쿠에서 운영 중인 체험형 매장 '신라면 분식'도 한글 간판을 내걸고 있습니다. 삼양식품(003230)은 'Buldak'을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고 있습니다. 동원F&B는 'Tuna with Hot Pepper Sauce'로 번역해 판매하던 고추참치 브랜드를 'GOCHU TUNA' 브랜드명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입니다.

CJ제일제당(097950)은 글로벌 시장에서 덤플링(Dumpling) 대신 만두(Mandu)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비비고(Bibigo) 브랜드 로고에 한글을 함께 적용했습니다. 롯데웰푸드(280360)는 파키스탄에서 판매 중인 쌀 스낵 제품 전면에 '쌀로칩'을 한글 그대로 표기했고, 베트남에서 판매 중인 분유 브랜드 '뉴본(Nubone)' 패키지엔 '우리 아이를 위한' 등의 한국어 문구를 삽입했습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해외 시장에서 한글을 빼고 영어·현지어를 써야 해외 진출이 쉽다고 봤지만, 최근엔 한글이 들어가야 '진짜 K푸드'라는 반응이 많다"며 "한글 자체가 한국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요소가 된 셈"이라고 했습니다.

아프리카 이집트의 한 식품점에서 불닭볶음면 위조품을 인스타그램에서 홍보하는 사진. 한글 표기가 있지만 삼양식품과 무관한 중국산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다만 한글이 K푸드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모방한 가짜·위조품(짝퉁) 문제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해외 시장에선 한글 문구나 태극기 이미지를 제품 패키지에 삽입해 한국산(産) 제품처럼 보이게 한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제품명이나 패키지 디자인을 유사하게 구성해 혼동한 소비자가 구매하도록 한 것이죠.

대표적인 사례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짝퉁 제품으로, 중국·동남아시아 등 해외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을 연상케 가짜 소주들이 한글이 표기된 채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도 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앞서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미국 뉴욕 맨해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다. 이런 짝퉁을 막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국가 인증제도를 통한 K푸드 브랜드 보호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업계에선 한글 자체가 K푸드 정체성을 상징하는 자산으로 자리 잡을 만큼,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글을 전면에 내세운 브랜딩 전략이 더 확산할 것으로 봅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현지 소비자가 읽기 어려운 한글이 약점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차별화 포인트가 되고 있다"며 "K컬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글 자체가 브랜드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앞으로 한글 로고·글자체 자체를 브랜드 자산·IP(지식재산권)로 관리하는 움직임이 커질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