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하면서 식품업계는 포장재 수급 불안과 케이(K)푸드 수출 감소가 겹친 이중고에 직면했다. 나프타(납사·Naphtha) 가격 급등으로 포장재 원료 가격이 오르면서 생산 여건이 흔들린 가운데 중동으로 수출되는 한국 식품 수출액도 급감하고 있다.
27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식품용 포장재는 소량 입고되거나 납기 지연이 반복되는 등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급 물량이 제한돼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 위주로 물량 확보가 이뤄지면서 중소 식품업체들은 필요한 물량을 제때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소업체나 작은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일부 부자재는 재고 소진 속도가 빨라 내부적으로 5월이 고비라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안다"며 "생산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발주를 앞당기고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포장재를 다른 재질로 대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부분 생산 설비가 비닐 포장에 맞춰져 있어 종이 등으로 바꾸려면 설비 변경이 필요할 뿐 아니라 유통기한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 재질을 바꾸기보다는 포장 여백을 줄이거나 사양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나프타 생산자물가지수는 직전 달 대비 68% 올랐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석유 관련 부자재 전반에서 가격 인상 압박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평균적으로 약 20~25% 정도"라며 "일부 상승분은 이미 가격에 반영됐거나 가격 인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중동으로 수출되는 K푸드 수출액도 급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중동 지역 식품 수출액은 지난 2월 830만달러(한화 약 122억6000만원)에서 3월 492만달러(약 72억6900만원)로 한 달 새 40% 넘게 감소했다. 중동 수출의 핵심 품목인 라면의 중동 수출액도 같은 기간 400만달러(약 59억1000만원)에서 286만달러(약 42억2500만원)로 약 28.5% 감소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 긴장 고조로 해상 운임이 오르고, 일부 항로 운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출하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현지 바이어들도 재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단기 주문을 축소하거나 계약 시점을 늦추는 등 전반적으로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한 무역업체 관계자는 "환율과 유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수입 비용 부담도 높아진 상황"이라며 "전쟁으로 현지 소비력도 위축돼 수입 식품 수요가 급감하면서 잘 안 팔리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포장재 원료 수급 어려움에 수출 감소 상황까지 겹치자, 업계에선 당분간 공급망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본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재고가 점차 소진되는 5월을 1차 고비로 보고 있지만, 아직 수급이 완전히 막힌 상황은 아닌 만큼 공급선 다변화와 발주 조정 등을 통한 대응이 이어지는 추세"라면서도 "중동 리스크와 원료 가격 변동성이 지속될 경우 비용 부담과 수급 불안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동 사태로 인해 원유 공급 불안과 가격 인상이 이어질 경우 포장재·플라스틱 등 석유 기반 원료를 사용하는 산업 전반의 생산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또 현지에서 K푸드는 필수재라기보다 기호 소비재 성격이 강한 만큼, 종전 이후에도 수요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현지 마케팅 협력 전략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