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수입 주류 시장에서 해외직구·병행수입의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가격 경쟁력만 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세금 부담을 회피하고 책임 소재를 흐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마트 수입 주류 판매대. /연합뉴스

◇ "국내서 운영, 형식은 해외"... 규제 사각지대 악용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주류 판매 업체들은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직구 형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일본·홍콩 등 해외 주소를 기재하고 직구 사이트처럼 운영하지만, 실제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중국 백주 '수정방 홍운장'은 일부 사이트에서 10만원대 초반에 판매되고 있는데 일반적인 국내 유통 가격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주류 수입 업체 관계자는 "홈페이지에 적힌 해외 주소나 회사 이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주류 판매와 무관한 장소인 경우가 많다"며 "실제 운영 주체는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홈페이지 서버만 중국이나 홍콩 등 해외에 두고 운영해 국내법의 직접적인 감시를 피하는 전략을 쓴다"고 했다.

홈페이지 서버를 중국이나 홍콩 등에 두고 운영하면 형식상으로는 해외직구 거래로 볼 수 있어 국내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영역에 놓일 수 있다. 물류는 중국 옌타이(烟台) 등지에서 이른바 '따이궁(보따리상)'을 통해 반입된다고 한다. 개인이 자가 소비 목적으로 반입하는 물품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역이나 관세 부과가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해외직구 자체는 불법은 아니다"라며 "국내에 기반을 둔 업체가 직구 형태로 주류를 판매하는 구조가 가능한지도 명확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국내에 기반을 둔 업체가 실제 유통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면 법적 회색지대를 악용한다는 의미다. 다만 겉모습이 직구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상 직접 처벌하기에는 현행 제도상 한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유통에 뛰어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류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류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수입 위스키나 백주의 경우 관세, 주세, 교육세, 부가세 등을 합치면 수입 가액의 약 130~140%에 달하는 세금이 부과된다. 따이궁을 통해 들여와 해외직구로 위장하면 세금을 회피할 수 있어, 정식 수입업체보다 가격 우위를 점하게 된다.

중국 주류 직구 사이트 캡처

◇ 갈수록 은밀해지는 판매 경로... 소비자 안전 우려

판매 경로 역시 갈수록 은밀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텔레그램 채팅방을 통한 거래도 활발하다. 취재 결과, 일부 비밀 채팅방에는 한 병에 1400만원에 달하는 고가 위스키가 매물로 올라오는가 하면, 한 판매자가 40~50여 종의 다양한 제품을 리스트업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들은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고 메시지를 통해서만 거래하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방을 수시로 없앴다가 다시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개인 간 거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거래 품목의 다양성과 반복성을 고려할 때 사실상 조직적인 영업 행위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병행수입 업자가 텔레그램 방에서 대량으로 판매할 가능성도 있다. 병행수입은 공식 수입사가 아닌 제3자가 해외에서 정품을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는 방식이다. 병행수입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유통 과정에서 품질 표시나 검역·인증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 유통이 소비자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친 제품에는 성분과 제조원 등이 상세히 적힌 한글 라벨이 부착되지만, 직구를 가장한 불법 제품은 이를 생략한다.

또 우려되는 대목은 가짜 술 리스크다. 본사의 공식 수출 권한이 없는 딜러들이 유통 과정에서 가짜 술을 섞어 팔더라도 이를 검증하거나 추적할 방법이 없는 탓이다.

'홈술(집에서 즐기는 술)' 문화의 확산으로 위스키와 백주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정작 제품에 대한 전문 지식은 부족한 소비자들이 가격만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면서 이러한 불법 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식 수입사들은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검역과 라벨 부착 등 까다로운 규제를 모두 준수한다"라며 "반면 직구를 가장한 불법 업체들은 이 모든 절차와 비용을 건너뛰고 있다. 이는 법을 지키는 업체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수입 주류 시장의 역차별이자 생태계 파괴 행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