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를 훼손한 자는 은(銀)으로 배상하라."

약 3500년 전 철기 문명을 꽃피웠던 히타이트 제국의 법전(The Hittite Laws)에는 이 같은 조항이 있었다. 오늘날 튀르키예의 영토 대부분을 포함하는 아나톨리아 고원을 지배했던 히타이트인들에게 포도나무는 국가의 근간이자 안보와 직결된 자산이었다. 당시 히타이트의 농업 관련 법령 중에서도 포도에 대한 처벌은 유독 매서웠는데, 포도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노예 한 명의 몸값과 맞먹게 책정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고의로 포도밭을 망가뜨리는 행위는 제국의 생명선을 끊는 중죄로 간주돼 엄격하게 다스려졌다.

히타이트인들에게 와인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과 소통하는 유일하고도 성스러운 통로였다. 포도밭이 파괴되어 와인 공급이 끊기는 것은 곧 신에게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됨을 의미했고, 이는 국가를 지탱하던 신의 가호가 사라지는 재앙으로 믿어졌다. 실제로 히타이트의 왕은 매일 아침 신의 제단 앞에 붉은 와인을 정성스럽게 따르는 제헌(Libation) 의식을 거행하며 제국의 번영과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동시에 와인은 통치 질서 안에 편입된 핵심적인 경제 자원이기도 했다. 아나톨리아의 와인은 인근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등지에서 매우 귀한 대접을 받는 최고급 사치품이었다. 이를 수출해 벌어들인 막대한 부는 철제 무기를 생산하고 전차 부대를 유지하는 군자금의 원천이 됐다. 고대 아나톨리아에서 와인은 종교적 경외심과 경제적 실리가 결합한 제국의 전략 자산이었던 것이다.

아나톨리아의 와인 서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을 거치며 상업적 산업으로 확장된 이곳의 와인 문화는 비잔틴과 오스만 제국을 지나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튀르키예 와인은 오랫동안 종교적·정치적 이유로 세계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으나, 최근 20년 사이 대대적인 자본 투입과 양조 현대화가 이뤄지며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 튀르키예는 전 세계 포도 재배 면적 5위권에 달하는 거대 산지이자, 100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토착 품종을 보유한 '와인 유전자고(庫)'다. 비록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아직 높지 않지만, 토착 품종을 앞세운 고품질 와인들이 생산되며 그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인근 칼레직(Kalecik)에 위치한 빈카라(Vinkara) 와이너리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생산자다. 2003년 설립된 빈카라는 해발 600m 이상의 고원 지대에 자리잡았으며, 잊혀가던 토착 품종을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특히 이들은 유럽의 정통 양조 기술인 '메토드 트라디셔넬(Méthode Traditionnelle)', 샴페인과 동일한 방식을 과감히 도입하며 튀르키예 와인의 체급을 격상시켰다.

대표 와인은 '야사슨(Yaşasın)'이다. 튀르키예어로 '만세' 또는 '인생이여 영원하라(Long live life)'라는 뜻이다. 샴페인 방식으로 빚은 튀르키예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름 그대로 승리와 성취, 환희의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태어났다.

야사슨은 튀르키예 토착 품종인 '칼레직 카라스(Kalecik Karası)'로 만들어진다. 섬세한 아로마와 우아한 구조감 덕분에 '튀르키예의 피노 누아'로 불리는 레드 품종이다. 클래식과 로제 두 가지 제품으로 출시됐는데, 이 중 클래식은 포도의 껍질을 즉시 분리해 화이트 와인으로 만드는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방식으로 양조를 진행했다. 이후 2년 이상의 병 내 2차 발효와 효모 숙성 과정을 거쳐 레드 품종 특유의 탄탄한 구조감과 스파클링 와인의 섬세한 기포를 동시에 확보했다.

야사슨 클래식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에 생 아몬드와 자몽 향이 코에서 느껴진다. 입 안에서는 신선한 산미가 주를 이루며 굴, 캐비어, 홍합, 염장육, 감자 튀김, 닭 튀김, 샤퀴테리와 잘 어울힌다. 야사슨 클래식은 '2026 대한민국주류대상' 스파클링 와인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베스트 오브 2026(Best of 2026)'을 수상했다. 국내 수입사는 시라 이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