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밀가루·전분당 가격 담합 의혹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거나 제재를 앞둔 식품업체들의 실적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영업이익 흑자에도 불구하고 순손실로 전환됐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CJ제일제당(097950), 삼양사(145990), 대상(001680), 대한제당(001790), 대한제분(001130), 사조동아원(008040) 등 주요 식품업체들이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지난해 실적이 악화했다. 실적에서 공정위 과징금 및 예상액을 충당 부채로 반영한 것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
공정위는 2월 12일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설탕 가격 조정 시기 및 금액 등을 담합한 혐의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에 총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CJ제일제당 1507억원, 삼양사 1303억원, 대한제당 1274억원이다. CJ제일제당은 담합에 해당하는 매출액이 조정되면서 1383억원으로 내려갔다.
이후 밀가루, 전분당 등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밀가루 담합에 대해 공정위 심사관은 7개 업체가 지난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가격과 물량을 배분하는 담합을 벌였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관련 매출액은 5조8000억원 규모로 산정됐다. 전분당 담합에 대해서는 대상·사조CPK·삼양사·CJ제일제당 등 4개 업체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 6개월간 반복적·조직적으로 전분당 판매가격을 담합했다고 판단했다. 영향 매출은 6조 2000억원 규모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매출 27조3426억원, 영업이익 1조2336억원을 기록했지만 순손실 417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2024년 순이익 3459억원에서 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매출은 전년 27조2397억원과 비교해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2024년 1조4521억원)이 감소했고, 과징금 반영이 수익성을 크게 훼손한 것으로 분석된다. CJ제일제당은 '유동 기타충당부채' 항목에 지난 12일 공정위가 기업 간 설탕거래 담합 행위에 대해 부과한 과징금 1383억원을 포함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19기 주주총회에서 손경식 대표 명의 인사말을 통해 주주들에게 실적 악화와 설탕 담합에 대해 사과했다. 손 대표는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완전히 뿌리 뽑고 회사 시스템과 문화를 밑바닥부터 다시 세우는 한편, 강도 높은 재발 방지책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양사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2025년 매출은 2조5626억원으로 전년(2조6718억원) 대비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1335억원에서 1117억원으로 줄었다. 특히 2024년 1364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3023억원의 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설탕 담합 과징금과 추가 제재 가능성이 반영된 영향이다. 삼양사는 설탕 담합 관련 과징금 1302억원을 확정받았고, 밀가루와 전분당 관련한 조사가 추가로 진행 중이다. 삼양사는 사업보고서에 유동 미지급비용과 유동 기타충당부채로 공정위 과징금을 총 4520억원 반영했다. 설탕 관련 과징금 외에 밀가루, 전분당 관련 예상 과징금을 기타충당부채로 선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상은 매출이 성장했지만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4조4013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순손실 3031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전년에는 75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대상은 '그 밖의 기타충당부채' 항목으로 3753억원을 기재하면서 "현재 공정위로부터 부당 공동행위에 대해 조사를 받고 있으며 과징금 예상액을 충당부채로 계상했다"고 공시했다.
대한제당도 영업이익은 늘었지만 순이익은 적자로 전환됐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566억원으로 전년(370억원) 대비 늘었지만 2024년 순이익 205억원에서 지난해 순손실 604억원을 기록했다. 대한제당은 공정위의 과징금 제재 금액인 1274억원을 기타충당부채로 기재했다. 대한제분 역시 영업이익 흑자를 유지했지만 순이익은 488억원 흑자에서 25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대한제분은 944억원을 기타충당부채로 공시하고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추정되는 과징금을 충당부채로 인식했다"고 했다.
사조동아원은 순손실 규모가 더 컸다. 영업이익은 425억원 수준을 유지했지만, 137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사조동아원은 1673억원을 기타충당부채로 기재하고 "기타충당부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와 관련해 향후 유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밀가루 담합 조사 대상인 한탑, 대선제분, 삼화제분 등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부 기업은 과징금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당부채를 반영하지 않거나 영향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공시했다. 전분당 담합에 연루된 사조CPK 역시 향후 과징금 규모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커질 전망이다. 한국제분협회는 지난달 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불거진 밀가루 가격 담합과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협회 이사회 전원이 사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실적 악화가 영업 부진보다는 회계상 비용 반영에 따른 구조적 영향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과징금은 영업 외 비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본업의 수익성과 무관하게 순이익을 훼손한다. 이 때문에 '영업 흑자·순손실'이라는 실적 구조가 일부 기업에서 나타났다.
향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설탕 담합은 이미 과징금이 확정됐지만, 밀가루와 전분당은 아직 최종 제재 수위가 결정되지 않은 탓이다. 공정위가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 비용 반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과징금은 향후 행정·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일부 조정될 수 있고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은 업계도 있지만, 과징금 규모 자체가 커서 단기 실적 충격은 불가피하다"며 "최근 내수 시장이 침체되고 이란 전쟁 등 국제 정세 악화로 포장재 등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업계가 다방면에서 실적 악화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