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대항해시대의 파고를 넘던 마젤란과 콜럼버스의 나침반은 금괴가 아닌, 작고 보잘것없는 말린 꽃봉오리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정향(Clove)'이다. 정향은 육류 요리나 소스, 베이킹, 그리고 뱅쇼·차 등 향을 더하는 데 사용되는 향신료다. 당시 유럽에서 정향은 단순히 식재료를 넘어선 권력의 화폐였다.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만 자생하던 귀한 향신료가 아랍 상인과 베네치아 상인을 거쳐 유럽에 도착할 때쯤엔 그 무게만큼의 금값과 맞먹는 가치를 지녔다. 귀족들의 연회에서 정향을 듬뿍 뿌린 요리를 내놓는 것은 곧 자신의 가문이 가진 부와 영향력을 증명하는 가장 화려한 수단이었다.
이 작고 매콤한 향기를 선점하기 위해 탐험가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고 미지의 바다로 돛을 올렸다. 당시 유럽에서 인도에 이르는 항해는 선원의 절반 이상이 폭풍우로 목숨을 잃는 처절한 사투였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적재함 가득 정향, 육두구 등 향신료를 채워 귀환하면 가난한 선원도 단숨에 거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의 지도는 향료를 찾아 떠난 열망의 궤적이던 셈이다. 그 중심에는 코끝을 찌르는 정향의 강렬한 아로마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포도 품종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로 만든 와인에는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향의 역사가 이어진다. '게뷔르츠(Gewürz)'는 독일어로 향신료를 뜻한다. 이 단어가 품종명에 직접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 화이트 와인 특유의 과실미와 함께 은은하게 느껴지는 향신료의 스파이시함이 특징이다.
이러한 품종을 세련되게 재탄생시킨 주인공은 독일 라인헤센(Rheinhessen) 지역의 '바인구트 프레이(Weingut Frey)'다. 라인헤센 남서부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오버-플뢰르스하임(Ober-Flörsheim)에 기반을 둔 이들은 18세기부터 와이너리를 운영해 온 유서 깊은 가문이다. 현재는 4세대인 필립(Philipp)과 크리스토퍼(Christopher) 형제가 와이너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독일의 명문 와인 교육 기관인 가이젠하임(Geisenheim)에서 수학한 이들은 현재 독일 와인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유망주로 꼽힌다. 아버지 스테판(Stefan) 역시 포도 재배부터 병입까지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며 가문의 전통을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프레이 형제의 철학은 명확하다. 인위적인 가공이 아닌, 건강한 토양의 자생력으로 품종 고유의 아로마를 정제해 내는 것이다. 이들은 2013년부터 공식 유기농 인증(EU Organic)을 획득하고 화학 비료나 살충제를 과감히 배제했다.
특히 이들이 자리 잡은 토양의 구조는 와인의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토양 맨 윗층은 미세한 바람에 날린 흙과 점토로 덮여 영양을 공급하고, 깊은 층은 조개 석회질(Muschelkalk)이 풍부하게 자리 잡고 있다. 게뷔르츠트라미너 특유의 묵직한 질감에 날카로운 산미와 팽팽한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 자칫 과하게 달거나 자극적일 수 있는 향신료의 풍미를 세련되고 우아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특히 프레이는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슈페트레제(Spätlese)' 스타일로 빚어낸다. 슈페트레제는 '늦게 수확했다'는 뜻으로, 포도가 완전히 익은 단계를 넘어 한층 더 농익을 때까지 기다려 수확한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더 깊은 향과 긴 여운을 남긴다.
'프레이 게뷔르츠트라미너 슈페트레제'는 수확 후 12시간 동안 포도 껍질을 침전시키는 과정을 거쳐 품종 본연의 향을 극대화한다. 이후 인위적인 효모 첨가 없이 자연 발효를 진행하며, 모든 양조 과정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이루어진다.
리치와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 향과 장미 꽃잎의 화려한 플로럴 아로마, 그리고 은은한 향신료의 뉘앙스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슈페트레제 등급 특유의 감미로운 단맛과 세련된 산도의 균형은 입안에서 긴 여운을 준다.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에 수여되는 '베스트 오브 2026(Best of 2026)'을 수상했다. 국내 수입은 현대백화점 그룹의 와인 수입 유통 전문 회사인 주식회사 비노에이치(Vino-H)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