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산업은 패션 산업과 닮아가고 있습니다. 생산자의 철학과 브랜드 스토리가 결합된 '가치 소비'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죠. 업계에서 병 안의 내용물을 중요하게 보는 것과 달리 소비자들은 병 밖의 이미지와 사용 편의성, 라이프스타일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술을 선택합니다."

지난 15~17일(현지 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메쎄'에서 열린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프로바인 제공

지난 15일(현지 시각) 글로벌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이 열린 독일 뒤셀도르프 메쎄 전시장. 제6관에 마련된 '아고라 스테이지(Agora Stage)' 연단에 오른 스피로스 말란드라키스(Spiros Malandrakis)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 주류 부문 총괄은 "주류는 더 이상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프로바인의 올해 슬로건은 '쉐이프·크리에이트·엘리베이트(Shape. Create. Elevate)'다. 시장을 새롭게 형성하고(Shape),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내며(Create), 브랜드의 위상을 끌어올려야(Elevate)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다.

◇ "소비자들, 지불한 비용만큼 확실한 가치 얻고 싶어 해"

프로바인 현장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주류 소비가 '양'에서 '질'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술 소비가 감소하고 건강 중시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이 술을 선택할 때 '언제, 무엇을, 왜 마시는지'를 고려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덜 마시되 더 좋은 것을 마신다(Drink less, but better)'는 흐름이 하나의 소비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변화는 전시 프로그램에서도 확인됐다. 프로바인은 전시 기간 동안 시장 전략과 방향성을 논의하는 '아고라(Agora)' 세션을 마련했다.

프랭크 슈나이더 프로바인 총괄 본부장은 "아고라는 업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논의하는 플랫폼"이라며 "지역이나 국가별로 따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다루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단순 시음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릴레이 강연·토론으로 시장을 읽고 해석하는 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변화다.

지난 15~17일(현지 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메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프로바인 제공

'가치 소비' 흐름은 특정 세대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프로바인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날 닐슨IQ의 주류 산업 분석가 케일리 테리오(Kaleigh Theriault)는 X세대(1965~1980년생)를 현재 주류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이 높은 핵심 소비층으로 지목했다. 그는 "전 세계 X세대 인구는 14억명으로 밀레니얼과 Z세대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대별 총지출액이 15조2000억달러로 가장 많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전체 주류 매출은 6920억달러인데 여기서 X세대는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와인 시장에서는 27%를 차지한다"라고 했다.

그는 "주류 시장은 현재의 침체기를 성장만으로 돌파하고 있지 못하다"라며 "소비자에게 올바른 상황에서, 올바른 제안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 "X세대 소비자의 40%는 '가성비'를 원재료의 품질로 정의한다"라며 "품질과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가격 대비 합리적인 가치를 함께 따지는 소비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지불한 비용만큼의 확실한 가치와 의미를 돌려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향후 5년간 X세대 주류 시장은 현재의 1.2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며 "같은 기간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이 X세대 주류 성장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Z세대(1995~2010년생) 역시 이유 있는 선택을 하기 원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Z세대는 자랄 때부터 수많은 선택지에 노출돼 왔기 때문에 '더 좋은 선택이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미래학자인 하트윈 마스(Hartwin Maas) 세대 연구소 설립자는 "더 많은 제품을 제시하기보다, 선택을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 Z세대를 공략하는 핵심 전략"이라며 "제품을 추천하고 정리해 주는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지난 15~17일(현지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메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프로바인 제공

◇ 주류·비주류 경계 무너져

결국 프리미엄화는 단순히 가격을 올리는 전략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선택의 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으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술을 소비하지 않는 탓이다.

말란드라키스 총괄은 와인 산업이 '편리함(Convenience)'이라는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선 PET 병이나 테트라팩(종이팩) 와인이 큰 성공을 거뒀다"라며 "기존 와인 업계가 따르던 관습에는 없는 방식이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던 '빈 공간(White Space)'을 정확히 파고들었다"고 설명했다.

유리병이라는 전통에 얽매이기보다 경기장, 콘서트장 등 다양한 상황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게 하는 편의성이 소비자에게는 강력한 제안이 된다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 와인과 스피릿의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도 올해의 주요 화두다. 코카콜라 같은 거대 음료 기업이 알코올 시장에 진입하고, 전통적인 주류사가 무알코올 RTD를 내놓는 것은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 선택이 됐다는 것이다.

지난 15~17일(현지시각) 독일 뒤셀도르프 '메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프로바인 제공

프로바인은 주류 산업 종사자만 입장 가능한 세계 최대 규모의 B2B 주류 전문 전시회다. 비넥스포(Vinexpo), 빈이탈리(Vinitaly)와 함께 세계 3대 와인 엑스포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최근에는 와인뿐 아니라 스피릿, 무알코올·저알코올 음료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주류 산업 전시회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전시회에는 전 세계 60개국, 4000여 개 업체가 참여해 혁신적인 제품과 비전을 선보였다. 개최지는 독일이지만 참가사의 약 87%가 해외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어, 사실상 글로벌 주류 무역 시장의 흐름과 미래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주류 산업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프로바인은 매년 독일 뒤셀도르프를 필두로 싱가포르, 상하이, 홍콩, 뭄바이, 상파울루, 도쿄 등 전 세계 주요 거점 도시에서도 개최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