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發) 나프타(납사·Naphtha) 수급 차질이 국내 유통·식품업계로 확산하면서 포장재 공급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완제품을 생산하고도 포장재 부족으로 출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23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제품 포장재 원료인 나프타 재고가 소진될 경우를 염두에 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는 석유화학 기초원료다.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거쳐 가공된 플라스틱 수지(PE·PP·PET)가 비닐·용기·트레이 등 포장재로 사용된다.
이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대표적인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길어지면서 원유뿐 아니라 나프타 수급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다. 원유 수급 불안이 나프타를 거쳐 플라스틱 수지 공급 차질로 이어졌고,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포장재 부족으로 연쇄 작용하면서 포장·출하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구조이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식품은 포장 단위로 유통되는 만큼, 포장재가 없으면 생산을 마쳐도 출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 포장재 재고로 버티는 유통·식품사들
현재 국내 주요 유통·식품사들은 비축된 포장재 재고로 버티는 상황이다. 농심(004370)은 포장재 계열사인 율촌화학을 통해 원재료를 다량 확보하고 있어 당장 2~3개월간 제품 공급·출하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현재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양식품(003230)도 현재 생산에는 큰 차질이 없지만, 포장재 원료 수급 불안이 지속될 경우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인한 단가 상승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오뚜기(007310)는 포장재 수급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약 1000종에 달하는 포장재 재고 및 협력업체 원료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풀무원(017810)은 용기 공급처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 포장재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다. 빙그레(005180)도 주요 제품에 사용되는 필름류 및 플라스틱 원료 수급 불안정을 주시하면서 신제품 출시 일정 조정을 검토 중이다. 동원F&B는 포장재 필름 원재료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장기 계약 파트너사와 협업을 강화하고 재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일부 중소 식품사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업체 등 이미 한계에 다다른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포장재 접착제 등 일부 품목은 재고가 한 달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대기업이 물량을 선점하면 중소업체는 원재룟값이 올라 자재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공급 (일시) 중단까지 거론될 정도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 중"이라고 했다.
유통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사전 물량 확보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PB(자체 브랜드) 상품을 중심으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업체들은 판매량이 낮은 제품 생산을 줄이고 주력 상품에 포장재를 우선 배분하는 방식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업계, 4월을 1차 분기점으로 전망
업계는 4월을 1차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와 나프타의 약 절반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오는 구조로 공급망 충격에 취약하다. 정부가 수입선 다변화와 수출 조정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물량 확보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포장재 업체들의 원료 재고 추가 확보가 지연될 경우 중소 제조사부터 생산·출고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4월을 시작으로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할수록 5~6월부터는 대기업도 영향받을 것"이라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포장재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면 판매·공급 자체가 멈출 수 있다"며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 차원의 공급망 안정화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