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시장을 겨냥해 할랄(Halal) 인증 제품을 확대해 온 국내 식품업계가 최근 격화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적 갈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동 지역을 둘러싼 긴장감이 지속되면서 물류와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등 새로운 할랄 시장으로 판로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1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식품기업들은 그동안 중동을 주요 할랄 수출 거점으로 삼아 시장을 확대해 왔다. 할랄 인증은 식품·화장품·의약품 등의 제품을 이슬람 율법에 따라 생산·가공한 것으로, 할랄 인증기관은 제품과 제조 과정이 할랄 기준을 충족하는지 심사해 공식 인증서를 발급한다. 이는 무슬림 시장 공략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양식품(003230)이다. 삼양식품은 2018년 아랍에미리트(UAE)의 할랄 인증을 취득한 뒤 2021년 현지 유통업체와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동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이후 UAE를 거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10여 개국으로 판매망을 확대했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중동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2%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업계에선 할랄 수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20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무슬림을 중심으로 할랄 케이(K)푸드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는 K푸드 기업들이 주목하는 신흥시장으로 꼽힌다. 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아 기존 할랄 인증 제품을 활용하기 쉽고, K콘텐츠 확산으로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아프리카·중앙아시아 K푸드 합산 수출액은 2023년 5768억원에서 2024년 7000억원, 지난해 8410억원으로 최근 2년간 각각 21.4%, 20.1% 늘었다. 이 같은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수출 규모는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최근 군사적 긴장으로 물류와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는 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고 기존 할랄 인증 제품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대체 시장으로서 가능성이 큰 편"이라고 했다.
국내 식품사들도 새로운 할랄 시장을 겨냥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불닭(Buldak)' 브랜드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기존 아프리카 10여 개국에 수출하던 불닭 브랜드를 올해는 아프리카 54개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무슬림 인구가 7억명에 달하는 만큼, 할랄 인증 제품을 통한 수요층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상(001680)은 종가 김치와 장류·소스 제품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재 대상이 진출한 아프리카 지역은 케냐, 가나, 모로코 등 6개국이다. 지난해 아프리카 지역 매출이 직전해 대비 52% 늘어난 만큼, 대상은 올해 이집트와 모리셔스 등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097950)도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 8개국에 할랄 인증을 받은 비비고 만두와 볶음면 등을 수출하고 있다.
식품업계의 중앙아시아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해 우즈베키스탄에 동원참치 수출을 시작한 동원F&B는 연내 카자흐스탄 등 인근 중앙아시아 국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올 상반기엔 양반김, 양반김부각 등도 수출할 계획이다. 이 외에 남양유업(003920)은 단백질 음료와 커피 등 제품을 카자흐스탄에 수출했고, 오뚜기(007310)는 할랄 인증을 받은 베트남 공장에서 수출용 진라면을 생산해 인도네시아 등 주변 무슬림 문화권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선 중동이 여전히 할랄 시장에선 핵심 지역이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만큼, 할랄 K푸드 수출 전략의 다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동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지만, 이번 군사적 갈등 고조로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중동 중심이었던 할랄 K푸드 수출 전략을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하는 방향을 고심하는 곳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으로 공급망 교란과 물류에 차질이 생기면 할랄 K푸드 수출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며 "중동 시장을 대체한다기보다는 보완·틈새 시장으로,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을 통해 할랄 K푸드의 수출 활로를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