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업계가 지난해부터 잇따라 인력을 줄이고 있다. 내수 부진과 원가 상승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로 가격 인상이 어렵게 되자 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이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과자류 코너. /뉴스1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이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인력 구조 조정에 나섰다. 과거에는 주로 부장급 이상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리·과장급 등 40대 초반까지 대상 범위가 넓어졌다.

롯데웰푸드(280360)는 지난해 4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한 데 이어 올해도 추가 신청을 받았다. 1981년 이전 출생자(45세 이상) 가운데 근속 10년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법정 퇴직금 외에 최대 24개월 치 급여와 재취업 지원금, 자녀 학자금 등을 제공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같은 결정에는 실적 흐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매출 4조216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1095억원으로 전년 대비 30.3% 감소했다. 카카오와 유제품 등 주요 원재료 가격 상승과 각종 비용 증가 탓이다.

빙그레(005180)도 지난 1월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해태아이스크림 직원까지 포함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은 2021년 이후 약 4년 만이다. 빙그레는 오는 4월 해태아이스크림과의 합병을 앞두고 조직 통합 작업을 진행 중이다.

빙그레의 지난해 매출은 1조4896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883억원으로 전년 대비 32.7% 감소했다. 롯데웰푸드와 마찬가지로 빙과 제품 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는 점에서 시장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원가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저출산으로 소비 기반이 줄어든 탓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희망퇴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파리바게뜨와 파스쿠찌 등을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은 최근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2023년 11월 이후 약 2년 만이다.

LG생활건강(051900) 자회사 코카콜라음료는 지난해 말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LG생활건강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두 번째 구조조정이다. 특히 이번에는 영업·물류 부문뿐 아니라 인사와 전략기획 등 관리 조직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식품업계 전반에서는 긴축 경영 기조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CJ제일제당(097950) 역시 조직과 사업 구조 전반을 재정비하는 체질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윤석환 CJ제일제당 대표는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파괴적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 비상 경영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희망퇴직 확산의 배경으로 식품 산업의 구조적 환경 변화를 꼽는다. 원재료 가격과 물류비, 전기료, 인건비 등이 동시에 오르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졌지만, 가격 인상을 통해 이를 상쇄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속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제품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구 구조 변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자와 유제품, 음료 등 주요 식품 소비는 경기뿐 아니라 인구 구조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주요 소비층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장기적인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경제 지표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전 산업의 3월 전망치는 기준선(100)을 넘어섰지만 식음료·담배 업종은 94.7에 머물렀다. 제조업 10개 업종 가운데 유일하게 기준선을 밑돈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 일시적으로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시장 환경에 맞춰 조직을 작고 효율적으로 재편하려는 성격이 짙다"며 "수출 비중이 적고 내수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고정비 절감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 압박은 올해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