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004370)이 네슬레코리아의 유통 파트너로 나서면서 국내 커피 시장의 판을 흔들지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네슬레가 농심의 전국 영업망을 활용하는 전략적 유통 협력 모델로 전열을 정비하면서, 믹스커피 중심으로 형성된 국내 커피 시장에서 캡슐커피를 중심으로 홈 카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농심·네슬레코리아 국내 유통 제품./농심 제공

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이달부터 네슬레의 약 150개 제품에 대한 국내 오프라인 유통을 맡는다. 네스카페, 돌체구스토, 스타벅스 앳홈 등 원두·스틱·캡슐커피 제품이 포함됐다. 이들 제품은 농심의 전국 영업망을 통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 주요 유통 채널에 공급될 예정이다.

농심과 네슬레는 과거에도 전략적 협업을 했었다. 2003년에는 농심이 네슬레의 네스카페와테이스터스 초이스 등 가루 커피 제품군을, 2013년에는 킷캣 등 제과 브랜드 유통을 맡았다. 네슬레 측은 "농심과 이번 파트너십은 과거 특정 카테고리에 국한됐던 협력 수준을 넘어, 양사의 핵심 역량을 결합한 포괄적이고 다각적인 형태의 협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파트너십을 기점으로 제품 카테고리 전반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협력은 네슬레가 한국 시장 전략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추진됐다. 네슬레는 1987년 한국네슬레를 설립하며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14년 롯데그룹과 지분을 절반씩 투자한 합작법인 롯데네슬레코리아가 출범했다. 롯데네슬레코리아 출범과 동시에 독립 법인인 네슬레코리아 유한책임회사가 신설됐다. 롯데네슬레코리아는 한국 시장에서 네슬레의 가루 커피 사업을, 네슬레코리아는 캡슐 커피와 제과 사업 등을 맡았다. 지난해 롯데네슬레코리아가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네슬레코리아는 현재 커피, 제과, 뉴트리션, 펫케어 등 광범위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롯데네슬레코리아가 청산 절차를 밟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 동서식품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인스턴트커피 시장(스틱형 포함) 규모는 약 1조3037억원이다. 이 가운데 동서식품의 점유율은 86.9% 수준이다. 소비자 10명 중 9명이 동서식품의 맥심이나 카누 제품을 마시는 셈이다.

과거 합작법인이 생산과 경영을 직접 맡았던 것과 달리 농심은 제조 부담을 지지 않고 유통에만 집중한다. 업계에서는 농심이 믹스커피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캡슐커피와 프리미엄 원두 제품군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캡슐커피 시장 규모는 약 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믹스커피 시장과 달리 캡슐커피 분야에서는 네슬레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네슬레 점유율이 80%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서식품은 캡슐커피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후발주자다. 하지만 2023년 선보인 캡슐커피 머신 '카누 바리스타'를 앞세워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출시 약 3년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커피 머신 구매 시 캡슐 구매 금액을 일정 수준 환급해 주는 공격적인 마케팅도 매출 확대에 힘을 보탰다.

농심 입장에서도 이번 협력은 커피 사업 재도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농심은 2013년 프리미엄 믹스커피 '강글리오 커피'를 출시하며 커피 시장에 도전했지만 판매 부진으로 3년 만에 사업을 접은 바 있다. 이번에는 자체 브랜드 대신 글로벌 브랜드 유통을 통해 시장 확장을 노리는 전략이다.

캡슐커피의 인기는 고물가 환경 속에서 가성비 소비와 맞물려 있다. 캡슐 가격은 보통 개당 600~900원 수준으로 하루 두 잔을 마셔도 카페 커피 한 잔 가격보다 저렴한 경우가 많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소비자에게는 경제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명 브랜드 캡슐이 대중화되면서 집에서도 동일한 브랜드 경험을 이어가려는 소비 심리도 영향을 미쳤다. 믹스커피가 단맛 중심의 비교적 단일한 맛을 제공했다면, 캡슐커피는 산미와 바디감, 향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도 소비층 확대 요인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커피 시장의 무게추가 점차 믹스에서 홈카페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커피 업계 관계자는 "캡슐커피는 머신 보급 이후 캡슐 소비가 반복되는 구조를 갖고 있어 시장 확대 가능성이 크다"며 "네슬레가 농심 유통망을 등에 업고 판매 채널을 확대하면 경쟁 강도는 더욱 세질 것"이라고 했다.

농심은 네슬레 제과 브랜드 킷캣과 호텔, 레스토랑 등 푸드 서비스 채널 시장 확대를 위해 네슬레의 B2B(기업 간 거래) 브랜드인 매기(Maggi), 부이토니(Buitoni) 제품도 판매한다. 농심 관계자는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을 이끌어온 농심의 유통 노하우를 통해 네슬레 제품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