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다시 방향을 틀면서 케이(K)푸드·뷰티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가별 상호관세에 제동을 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전 세계 수입품에 15%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면서 정책 예측 가능성이 낮아진 탓이다. 업계는 관세율 자체보다 정책 불확실성을 중장기 전략의 핵심 리스크(위험 요인)로 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23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관세 정책을 둘러싸고 전략 수립 신중론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현재 관세율만 놓고 보면 기존과 큰 차이는 없지만, 연방대법원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법적 근거를 통해 글로벌 관세를 재가동하는 등 정책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관세율이 고정 변수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격 조정이나 투자 여부를 전제로 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건 리스크가 크다"며 "전략 확정·실행보다 대응 시나리오를 축적하는 단계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글로벌 관세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린 직후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튿날 이를 15%로 상향했다. 이 조치는 행정명령 발효 시점부터 최대 150일간 적용된다.

식품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 기반 유무에 따라 관세 체감도가 엇갈리는 모습이다. CJ제일제당(097950)농심(004370)은 주요 제품을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판매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양사 모두 기존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물량을 소화하면서 관세 정책 흐름과 미 행정부의 후속 조치를 지켜본 뒤 중장기적인 현지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반면 국내 생산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관세 부담이 큰 상황이다. 미국 생산 공장이 없는 삼양식품(003230)은 국내 생산 물량에 관세가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지만, 현지 판매 증가세를 고려해 당장의 가격 인상보다 대응 시점을 조율하고 있다. 오리온(271560)은 꼬북칩 등 일부 제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미국 매출 비중이 약 1%로 크지 않아 단기적인 관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오뚜기(007310)는 2027년 말 완공을 목표로 미국 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완공 전까지는 관세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관세 이슈와 별개로, 오뚜기는 현지 유통망 확대와 하반기 현지 맞춤형 제품 출시 등 기존에 수립한 현지 전략을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뷰티·화장품 전문 전시회 '2025 인터참코리아'에서 외국인 참관객이 마스크팩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 /뉴스1

뷰티업계도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변동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K뷰티에 대한 미국 내 수요가 견조해 당장 매출 타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책의 연속성이 흔들린 점은 리스크라는 게 주된 시각이다.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콜마(161890)코스맥스(192820) 등 화장품 ODM(제조자 개발 생산) 업체들은 현지 공장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홈 뷰티 디바이스 기업 에이피알(278470)도 미국 시장을 전제로 한 생산 이전이나 신규 투자 계획은 확정하지 않고 기존 사업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패션업계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패션 ODM 한세실업(105630)은 해외 사업 중 미국 비중이 약 80%에 달한다. 관세 부과 이전부터 중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를 진행해 온 만큼, 이를 바탕으로 통상 리스크를 분산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상당수 대응책이 확정된 중장기적 현지 전략이라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택지를 쌓아두는 예비 방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공격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변수를 잘 관리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정책의 방향과 연속성이 정리돼야 본격적으로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로 관세 이슈가 정리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적용을 위한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관세 영향을 피하기 위해 성급하게 현지 생산에 나서기보다는 통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