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북단에 있는 알토 아디제(Alto Adige) 지역은 언제나 경계에 놓여 있었다. 알프스의 험준한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이 땅은 돌로미티라는 관광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이탈리아의 한 행정 구역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역사적 층위가 두터운 곳이다. 550여 년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던 이곳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로 편입됐다.

국경은 바뀌었으나 언어와 문화, 생활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이탈리아 땅이 된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주민들의 언어와 문화, 생활 방식은 여전히 오스트리아에 가깝다. 지금도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함께 쓰이고, 지역명 역시 이탈리아어 '알토 아디제'와 독일어 '남티롤(Südtirol)'이 병기된다. 두 세계의 정체성이 팽팽하게 맞물려 있는 '경계의 땅'인 셈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역사는 알토 아디제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도 이어진다. 알토 아디제의 와인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이탈리아답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알프스 남쪽 사면의 고지대 포도밭, 혹독한 일교차, 그리고 석회질과 자갈이 뒤섞인 척박한 토양은 이곳만의 독특한 테루아를 형성한다. 여기에 중부 유럽 특유의 정밀한 농업 관리와 이탈리아의 양조 전통이 겹쳐지며 산도와 구조감이 뚜렷한 화이트 와인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그래픽=손민균

이 지역의 균형을 가장 정직하게 구현하는 생산자가 '칸티나 트라민'이다. 1898년 트라민 마을의 사제였던 크리스티안 슈롯이 설립한 협동조합으로 출발해, 오늘날에는 160여 가구의 재배자가 함께하는 대형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협동조합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급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포도밭을 세분화해 관리하고, 품종별 수확 시기를 엄격히 구분하며, 개별 발효와 숙성을 통해 원료의 차이를 섬세하게 다룬다. 집단과 개인, 효율과 정밀함 사이에서도 균형을 택한 운영 방식이다.

이 철학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와인이 '스토안 비앙코(Stoan Bianco)'다. '스토안'은 표준 독일어 '슈타인(Stein)'의 현지 방언으로 '돌'을 뜻한다. 이름부터가 이 지역의 토양을 가리킨다. 빙하가 알프스를 깎아내리며 남긴 석회암과 자갈, 암석이 포도밭의 기반을 이룬다. 배수가 빠른 토양에서 포도나무는 바위틈 사이로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땅속의 미네랄을 흡수한다. 결과적으로 와인에는 짭조름한 미네랄리티와 단단한 골격이 형성된다. 척박한 돌밭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여기는 지역의 인식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겼다.

스토안 비앙코의 또 하나의 균형은 품종에서 드러난다. 샤르도네를 중심으로 소비뇽 블랑, 피노 비앙코,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블렌딩한다. 어느 하나가 주인공이 되기보다, 각 품종이 역할을 나눠 전체 구조를 완성한다. 샤르도네가 우아한 뼈대를 잡으면, 소비뇽 블랑과 피노 비앙코는 신선함을,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화사한 아로마를 더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이 정교한 블렌딩은 알토 아디제가 걸어온 역사의 균형 감각과 닮아있다.

포도는 해발 250m에서 850m에 이르는 고지대에서 재배된다. 알프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가운 북풍과 오후부터 불어오는 가르다 호수의 따뜻한 바람은 극적인 일교차를 만들어 포도가 최상의 산도와 아로마를 머금게 한다.

포도는 수확 후 작은 상자에 담아 즉시 부드럽게 압착하고, 18~20℃로 온도를 조절한 대형 오크 배럴에서 천천히 발효한다. 이 과정에서 부분적인 젖산 발효가 진행된다. 와인은 자연 침전을 통해 정화되며, 효모 찌꺼기와 접촉한 상태로 품종별로 숙성된다. 블렌딩과 병입 이후에는 최소 3개월 이상의 병 숙성을 거치며, 전체 숙성 기간은 최소 14개월에 이른다.

색상은 옅은 황금빛이다. 복숭아와 살구, 배의 과실 향에 딱총나무꽃과 금귤, 자스민, 미모사 같은 꽃 향이 겹겹이 펼쳐진다. 입안에서는 파인애플과 바나나, 배, 토마토잎과 녹색 피망, 시트러스 제스트가 조화를 이루며 균형 잡힌 구조를 보여준다. 짭조름한 미네랄리티가 중심을 잡고, 피니시는 길고 크리미하게 이어진다. 다양한 파스타 등 전채 요리, 생선 요리, 하얀 육류나 버섯을 곁들인 매콤한 돼지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로버트 파커 94점, 와인 스펙테이터 91점, 제임스 서클링 93점을 받았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나라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