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류 기업들이 잇따라 지분 매각과 사업 정리에 나서고 있다. 성장성이 떨어진 비핵심 자산을 과감히 매각하며 몸집을 줄이는 대신, 수익성이 높은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이다. 국내 주류업계 역시 제품군 축소와 사업 구조 조정, 비용 효율화를 중심으로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건강을 중시하는 절주 트렌드와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많이 파는 술'보다 '남는 술'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성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뚜렷해지고 있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는 중국 고급 바이주 업체 '수정방'의 지분 63%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디아지오는 그간 골드만삭스, UBS 등과 함께 잠재적인 인수 후보를 물색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수정방 지분 매각 검토는 단발성 조치가 아니다. 디아지오는 지난해 비용 절감 프로그램인 '액셀러레이트(Accelerate)'를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향후 3년간 약 6억2500만달러(약 83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목표로 제시했다. 핵심 사업이 아닌 브랜드와 자산은 정리하겠다는 기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실제로 디아지오는 일부 자산을 지난해 꾸준히 정리해 왔다. 작년 8월에는 호주의 즉석 음용주(RTD) 브랜드인 유디엘(UDL)과 루스키 레몬(Ruski Lemon)을 호주 주류 업체인 보크 베버리지스(Vok Beverages)에 매각했고, 작년 12월에는 이스트 아프리칸 브루어리(EABL)의 경영권 지분을 일본 아사히 그룹 홀딩스에 넘겼다. 수정방 지분 매각 검토 역시 이 같은 포트폴리오 단순화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프랑스 주류 대기업 페르노리카도 사업 재편에 나섰다. 페르노리카는 작년 12월 미국 내 스파클링 와인 사업의 소유권을 나파 밸리를 기반으로 한 가족 소유 와인·주류업체 '트린체로 패밀리 와인 앤 스피리츠(Trinchero Family Wine and Spirits)'에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 절차는 올해 봄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다.
페르노리카는 공식 발표를 통해 "프리미엄화 전략에 따라 프리미엄 해외 주류 및 샴페인 브랜드 포트폴리오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와인 부문 가운데서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한 사업을 정리하고, 핵심 증류주와 샴페인에 역량을 쏟겠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주류 기업들의 움직임에는 공통된 배경이 있다. 지분 매각이나 사업부 단위의 정리를 통해 구조를 단순화하고, 자본과 경영 자원을 성장성이 높은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맥주나 저가 와인처럼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나는 '박리다매형' 제품의 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 확산과 절주 문화 정착으로 주류 소비 자체가 줄어들고 있어 마진이 낮은 대중적인 주류 사업은 업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매출 규모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위스키·프리미엄 증류주 등 한 병을 팔아도 수익이 남는 제품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국내 주류업계는 해외처럼 뚜렷한 지분 매각이나 사업 철수 사례는 아직 없다. 대신 제품·사업 포트폴리오 조정과 비용 구조 개선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작년 말 '크러시'와 '클라우드' 생맥주 제품 2종을 단종했다. 외식·유흥 시장 침체로 생맥주 채널의 수익성이 떨어진 데다, 프리미엄 맥주 특유의 높은 원가 부담이 맞물리자 사업 효율화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클라우드는 100% 몰트와 아로마 홉을 사용하는 프리미엄 라거로, 일반 제품 대비 원가 부담이 큰 편이다. 호프집·레스토랑·치킨 전문점 등에 공급되던 생맥주만 단종하고, 캔·병 제품은 기존과 동일하게 운영하는 방식으로 조정했다. 롯데칠성음료 측은 "맥주 사업 영역을 재정비하고 주력 제품군에 집중해 효율적인 비즈니스를 전개하고자 크러쉬, 클라우드 생맥주 운영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롯데칠성은 이와 함께 지난해 한 해 동안 '클라우드 생 드래프트', '클라우드 칼로리 라이트' 등을 잇따라 단종하며 제품군을 축소했다. 무알코올 제품도 정비 대상이었다. 기존 '클리어'와 '클리어 제로'를 정리하고 '클라우드 논알콜릭'으로 브랜드를 통합하는 등 브랜드 중심 재정비를 이어갔다.
하이트진로는 지분 매각이나 제품 단종보다는 전략과 조직 재편을 통한 체질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말 대표이사 교체 후 해외 시장 확대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요 경영 방향으로 강조하고 있다. 내수 중심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수출과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 방식으로는 술이 다시 많이 팔리기 어렵다는 판단이 구조 재편의 출발점이다"라며 "지금은 변화한 소비 환경에 맞는 사업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