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있는 한섬의 '타임(TIME)' 플래그십 매장.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 이어진 건물 1층에 들어서자 여성복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소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2층과 3층에는 타임 제품들이 진열돼 있고, 쇼핑 동선을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에 올라가면 '카페 타임(Café TIME)'이 나온다. 브런치 메뉴와 커피, 와인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앉아 음료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쇼핑을 마친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카페로 이동해 머무는 구조다.

이처럼 최근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카페와 식음(F&B) 경험 공간을 운영하며 고객 접점을 넓히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업계 전반에서 '입는 것' 중심에서 벗어나 먹고 마시는 경험까지 아우르며 라이프스타일을 총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이커머스 확산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가운데, 브랜드들은 공간과 경험을 무기로 생존 전략을 다시 쓰고 있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있는 여성복 브랜드 '타임(TIME)' 대형 플래그십 매장 1층 전경. 의류와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전시돼있다./현대백화점그룹 제공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패션 전문 기업 한섬은 지난해 11월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여성복 브랜드 '타임(TIME)' 대형 플래그십 매장을 열며, 자체 F&B 브랜드 '카페 타임(Café TIME)'을 함께 선보였다총 1858㎡(약 562평) 규모로 한섬이 운영하는 1300여개 매장과 플래그십 스토어 가운데 가장 크다.

한섬 관계자는 "개점 후 두달 간 타임 플래그십 스토어의 매출이 최초 세웠던 매출목표 대비 20% 이상 달성하며 순항하고 있다"라며 "30년간 축적된 타임의 헤리티지가 공간으로 구현되며 두터운 팬층으로부터 방문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카페 타임 또한 오픈 한달만에 점심 시간에는 만석을 채우는 등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라고 밝혔다.

앞서 한섬은 2024년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키스(KITH)' 매장을 성수동에 내면서 뉴욕 브런치 레스토랑 '사델스(Sadelle's)'와 시리얼 아이스크림바 '키스 트리츠(Kith Treats)'를 함께 열기도 했다.

하고하우스의 보난자 커피 롯데백화점 인천점./하고하우스 제공

브랜드 인큐베이터 하고하우스도 F&B 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하고하우스는 2023년 말부터 독일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보난자 커피'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기존에는 한남동에서 카페를 운영해왔지만 하고하우스가 투자하는 패션 브랜드 마뗑킴이 성수동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확장 이전하면서 같은 공간에 보난자 커피를 들였다. 롯데백화점 인천점, 스타필드 수원점 등 대형 몰에도 잇따라 입점하고 있다. 패션 매장과 카페를 결합해 브랜드 경험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제시하는 전략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명품 브랜드들은 국내외에서 일찌감치 카페와 파인다이닝을 운영해왔지만 최근 들어 이를 더욱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서울 강남에서 '르 카페 루이비통'을 운영 중인 데 이어 지난해 11월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르 카페 루이 비통 신세계 더 리저브'를 추가로 열었다. 미쉐린 2스타를 받은 뉴욕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가 운영하는 '제이피 앳 루이비통 레스토랑'도 이달 문을 열었다. 구찌 역시 2022년 이태원에서 문을 열었던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을 지난해 9월 청담으로 이전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더 리저브에 마련된 '루이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 카페./연합뉴스

패션 기업들이 이처럼 F&B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매출 때문만은 아니다. F&B 업장이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이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세계 각지에서 운영하는게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라며 "매출보단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F&B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이들이 F&B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고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경험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기보다 브랜드의 세계관을 얼마나 깊게 각인시키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됐다. 카페와 복합 공간이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는 장치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리서치 업체 세빌스는 "여러 브랜드가 각각 뛰어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한다면 이러한 브랜드가 모여있는 거리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일 수 있고 주변 지역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소비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를 경험하고 품질을 직접 느껴보고, 브랜드와 공감대를 형성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소셜미디어 노출 효과도 중요한 배경이다.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기억에 남고 아름답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간 투자와 콘텐츠 기획이 필요하다. 이런 콘셉트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도록 설계된다. 브랜드들은 이를 통해 도달 범위와 인지도를 높이고, 나아가 브랜드 가치 자체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미국 포브스지는 "팬데믹 이후 시대는 소매 경험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고, 브랜드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소비자에게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라며 "경쟁력을 유지하고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외식업 진출은 인기 있는 전략이 됐다. 관건은 브랜드들이 고객을 즐겁게 하고 끌어들이기 위해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가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