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설탕세(설탕 부담금)' 도입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물으면서 정부 내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식품업계에서는 원가 부담에 증가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 정치권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28일 X(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을 부과해 설탕 사용을 억제하고, 그 재원으로 지역·공공 의료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법적·정책적 검토가 시작된 상황이다. 다만 세금보다는 특정 목적 재원 마련을 위한 '부담금'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온다.
식품업계는 설탕세 논의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설탕세가 도입될 경우 특정 품목이 아닌 식품업계 전반의 원가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고환율과 원자재 가격 상승, 인건비·물류비 부담이 누적된 상황에서 추가적인 원가 상승 요인은 기업 수익성을 더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설탕은 소금처럼 소비를 완전히 줄이기 어려운 필수 원재료인 만큼, 부담금이 부과될 경우 기업들이 제품 가격에 이를 전가하면서 체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각종 가공식품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제품이 거의 없다. 담뱃값 인상 사례와 비교하기에는 가공식품은 대부분의 국민이 소비자인 상황"이라며 "설탕세가 도입되면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될 것이고 업계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부담이 클 것"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고환율이 지속되고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각종 규제 등으로 압박하면서 가격 인상 고려는 하기 어렵다"며 "설탕세 도입 또한 원가 상승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라 식품업계 입장에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내수를 위주로 하는 식품기업들은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가격 인상만으로 설탕 소비나 비만율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데 한계가 있었고, 오히려 '원정 쇼핑' 증가나 식품 산업 위축, 고용 감소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은행(WB)의 글로벌 가당 음료(SSB) 세금데이터베이스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영국·미국·프랑스·멕시코·노르웨이 등 약 118개 국가와 지역에서 설탕 음료에 대한 과세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이 꼽힌다. 영국은 2018년부터 '청량음료 산업 부담금(Soft Drinks Industry Levy·SDIL)'을 도입해 음료 1ℓ(리터)당 당 함량이 일정 기준을 넘을 경우 단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정책 시행 이후 과세 대상 음료의 평균 당 함량은 약 30%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세금 부담을 피하고자 코카콜라·펩시 등 글로벌 음료 기업들도 제품 레시피를 조정하면서 무설탕·저당 비중을 늘린 결과다. 다만 이 변화가 영국인의 비만·당뇨 유병률 감소로 직결됐다는 연구 결과나 통계는 없다.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설탕세는 없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오클랜드, 필라델피아 등 일부 도시가 설탕세를 도입하고 있다. 정책 시행 후 이들 과세 지역 내 가당 음료 판매·섭취량이 줄었다. 다만 정책 적용 범위가 도시 단위에 그치면서 인접 지역으로 가당 음료 등을 구매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북유럽 국가들 역시 설탕 관련 과세 정책을 시행해 왔다. 노르웨이는 설탕·당류 과세를 장기간 유지해 왔다. 1922년 설탕세를 도입한 이후 사탕·초콜릿·청량음료 등에 대한 세금을 운영해 왔다. 2018년 설탕 음료와 과자류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했는데, 소매업계 반발과 스웨덴 등 인접 국가로의 '원정 쇼핑' 증가가 문제로 지적되면서 2020년 세율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조정이 이뤄졌다.
덴마크는 설탕세를 폐지한 대표 국가로 꼽힌다. 덴마크는 1930년대부터 탄산음료에 이른바 '소다세(Soft Drink Tax)'를 부과해 왔지만, 물가 상승과 원정 쇼핑 등을 문제로 2013년 세율을 낮춘 뒤 2014년 1월 소다세를 전면 폐지했다. 최근에는 생활비 부담 완화를 이유로 사탕·초콜릿·고당도 식품 관련 세금 인하 논의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이미 2016년부터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시행하는 등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설탕 사용량이 줄었다"며 "가공식품에 한정한다고 해서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한계가 있고, 건강 증진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가 공공의료 재정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에 설탕세가 부합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설탕세를 올리면 설탕이 들어간 제품들의 소비자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인공 감미료로 대체한다고 해도 안전 문제도 있고, 가격 차원에서도 전부 대체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설탕세 도입으로 식품 가격만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결국 소비자한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다음 달 12일 '설탕 과다 사용 부담금 국회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