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인 상승 랠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대형 주류 기업들의 주가는 오히려 역행했다. 각국 증권시장을 대표하는 지수보다 주가가 더 떨어진 종목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위스키, 코냑 등 고가 증류주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가진 회사들의 타격이 컸다.
과거에는 주류주가 '경기가 나빠져도 술은 마신다'는 논리로 방어주 취급을 받았지만, 이 같은 얘기는 옛말이 되고 있다.
28일 조선비즈가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우리나라 등 주요국 증시에 상장한 주류 관련 종목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글로벌 대형 주류 기업 주가는 연초 대비 연말 최대 34%까지 하락했다. 주가가 상승한 기업도 있지만, 각각 상장한 증권시장을 대표하는 지수 상승폭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계 최대 주류 기업 중 하나인 영국의 디아지오(Diageo)는 지난 1년간 주가가 34%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영국 FTSE100 지수가 20%대 초반의 견조한 상승을 보인 것과 정반대다.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와 세계 1위 흑맥주 기네스 등의 대형 주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의 소비 둔화가 실적 전망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블룸버그는 "작년 10월 기준 세계 50여 개 맥주·와인·증류주 업체들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지난 4년 동안 총 8300억달러(1196조4500억원)의 시가총액이 사라졌다"며 "2021년 6월 고점 대비 46%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갤럽이 실시한 최신 소비 습관 조사를 인용해 "2025년 8월 기준 미국인의 약 54%가 술을 마신다고 답했지만 이는 2023년의 62%, 2024년의 58%와 비교된다"며 "갤럽이 90년 동안 조사해 온 이래 1958년에 기록한 최저치인 55%보다 낮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주류 브랜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프랑스 증시의 CAC40 지수가 약 10% 상승하는 동안, 발렌타인과 로얄 살루트로 유명한 페르노리카(Pernod Ricard)의 주가는 30.3% 하락했다. 코냑 시장을 대표하는 레미 코인트로(Remy Cointreau) 그룹 역시 한 해 동안 주가가 34.2% 하락하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미국 시장에서도 주류주는 소외됐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작년 한 해 동안 15%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 종합주류기업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는 주가가 22%가량 하락했다. 콘스텔레이션브랜즈는 맥주 브랜드 모델로와 와인 브랜드 로버트 몬다비 등을 거느린 거대 기업이다. 미국 테네시 위스키 잭 다니엘을 판매하는 브라운포맨,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맥주 브랜드 몰슨쿠어스 역시 연간 주가가 각각 22.1%, 9.6% 하락했다.
한국에서도 코스피 지수가 작년 한 해 71.3% 상승하는 동안 하이트진로(000080) 주가는 5.8% 하락했다.
다만 일부 맥주 기업들은 차별화된 흐름을 보였다. 일본의 기린홀딩스는 연간 주가가 18.9% 상승했고, 벨기에의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도 19.2% 상승했다. 하지만 닛케이 평균이 28.4%, 벨기에 BEL20 지수가 20.8%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상승 폭은 작다.
주가 하락 폭이 큰 주류 업체의 공통점은 '고가 증류주(Spirits)'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다. 하락 폭이 컸던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레미 코인트로 등은 모두 위스키와 코냑 등 단가가 높은 증류주가 주력이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자, 필수재가 아닌 고가 주류부터 소비를 줄인 게 직격탄이 됐다. 반면 가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맥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타격이 덜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 기업은 매출의 상당 부분을 미·중 양국에 의존하고 있으나,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와 미국의 재고 과잉 문제가 겹치며 실적 압박이 커졌다"며 "특히 독주를 즐기던 중국 시장의 소비 위축은 고가 브랜드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가볍게 마시거나 아예 술을 피하는 트렌드가 확산된 영향도 크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건강을 중시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도수가 높은 술을 기피하고 저알코올 또는 무알코올 음료를 찾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전통적인 증류주 강자들이 이러한 트렌드 전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의구심이 주가에 반영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프리미엄 증류주 중심 모델은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한 전통의 강자들은 증시에서도 소외됐다"며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신흥시장 공략 여부가 기업 가치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