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산 사케 국내 수입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한때 불매 운동 여파로 급감했던 사케가 다시 수입 주류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자, 업계에서는 와인·위스키 중심이던 주류 시장에서 사케가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픽=손민균

26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산 사케 수입액은 2784만달러(약 400억원)로 전년 대비 21.2%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수입량도 5417톤(t)으로 11.8% 늘었습니다. 수입액과 물량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산 사케 수입은 지난 2019년 소위 '노재팬(No Japan)' 불매 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불매 이전인 2018년 일본산 사케 수입액은 2251만달러(약 324억원)였지만, 불매가 본격화된 2019년엔 1579만달러(약 227억원), 2020년엔 1174만달러(약 169억원)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부터 매년 수입액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수입 규모는 불매 운동 이전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25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 열린 '2025 서울사케페스티벌'에서 업체 관계자가 시음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 /뉴스1

◇ 고물가 시대에 와인·위스키 대안 된 사케… 엔저 기조도 영향

주류업계에선 이 같은 흐름의 배경으로 주류 소비 구조의 변화를 꼽습니다. 소주와 맥주가 익숙하지만 색다른 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고물가 시대에 와인·위스키 등 고급 주류에 대한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사케가 자연스럽게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수도 비교적 낮고 음식과 함께 즐기기 좋다는 점도 최근 음주 문화와 맞물렸다는 평가입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일본 여행 경험이 많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사케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줄었다"며 "오마카세가 유행하면서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과 일식 전문점도 늘었다. 사케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셈"이라고 했습니다.

엔저(엔화 약세) 기조 역시 일본산 사케 수입 증가 배경으로 거론됩니다. 최근 1년간 원·엔 환율은 100엔당 약 920원대에서 1000원 안팎 수준에서 움직였고, 현재도 100엔당 930원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엔화 가치는 낮았다. 수입사들은 일본산 주류 수입 단가 부담이 적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고 했습니다.

일러스트 = 챗gpt 달리

◇ 사케 사업 전략도 재편… 한동안 완만한 증가세 유지 전망

주류업계도 일본산 사케 관련 사업을 전략적으로 키우는 분위기입니다. 하이트진로(000080)는 현재 18개 양조장에서 사케 42종을 수입·유통하고 있습니다. 특정 히트 상품에 의존하기보다 지역과 양조장별 특색을 살린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와인 수입·유통사 나라셀라도 사케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 효고현의 명문 사케 양조장 메이조주조의 프리미엄급 '메이조 준마이다이긴죠 마루 와라이'를 국내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또 보통주부터 준마이·준마이긴죠·준마이다이긴죠 등 다양한 등급을 갖춰 와인 중심이던 수입 구조에서 사케 비중을 늘려 기존 와인 소비층의 유입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사케 대중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 겸 크리에이터 추성훈과 협업해 선보인 사케 '아키그린'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면서 초도물량 4만병이 완판되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낮은 도수와 소용량 패키지, 합리적인 가격대를 앞세워 '사케 입문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힙니다.

주류업계는 사케 수입 증가가 단기간에 꺾이기보다는 완만한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환율이나 소비 트렌드 변화 같은 외부 변수는 늘 존재하지만, 사케는 입문형부터 프리미엄까지 선택의 폭이 넓어 시장 대응력이 있는 주종"이라며 "당장의 물량 확대보다는 다양한 제품을 경험하게 하면서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방향으로 시장을 키우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교수는 "사케는 최고급 제품도 국내 소매가가 통상 20만원을 넘지 않는다. 4만~5만원대에서도 고급 사케를 마실 수 있어 고물가 시대에 합리적인 선택지가 됐다"며 "'똘똘한 한 병'을 고르는 소비가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했습니다.